[천수이볜의 대만] 2.정계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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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만 정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치세력간 미증유의 대규모 이합집산이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 우선 야당 13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민주진보당(民進黨)이 본격적인 '몸 부풀리기' 에 나섰다. 현재의 정치 판세로는 제대로 된 여당 노릇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민진당은 먼저 무소속을 흡수한 뒤, 신당과 국민당내 불만세력을 개별 접촉해 동조세력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민진당 중진인 셰창팅(謝長廷) 가오슝(高雄)시장은 20일 오전 "우리당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입법의원 몇 명을 만나 우리 당의 정책을 논의했다" 고도 말했다. 본격적인 '스카우트전(戰)' 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민진당 기획국내 한 관계자도 19일 "주로 당적이 없는 의원들이 천수이볜(陳水扁)당선자의 '자주 노선' 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고 얘기했다.

타이베이(臺北) 시의원과 가오슝 시의원들에 대한 폭넓은 접촉도 진행 중이다. 두 도시는 대만의 '두 눈동자' 와 같은 존재.

이 도시의 의회를 장악하는 일은 입법원내 다수를 차지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타이베이시의 경우 국민당 22석, 민진당 19석, 신당 9석, 무소속 1석의 순이고, 가오슝시는 국민당 22석, 민진당 10석, 신당 1석, 무소속 10석이다. 일단 국민당을 제쳐 놓더라도 민진당이 파고들어갈 여지는 적지 않다.

야권 세력의 '헤쳐모여' 도 재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차점을 차지한 쑹추위(宋楚瑜)무소속 후보가 19일 창당을 선언했다. 宋은 당초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당을 따로 만들 생각은 없다" 고 누차 밝혔다.

그러나 선거 패배 이후 宋의 태도는 표변했다. "대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외면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용서받지 못할 죄" 라는 게 이유다. 宋이 민의(民意)에 자신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宋이 陳당선자의 득표율 39.3%에 거의 육박하는 36.8%를 얻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宋의 '전국적인 고른 득표율' 이다.

전국 23개 투표권역 중 宋은 13개 권역에서 우세를 보였다. 패배한 권역에서의 표차가 지나치게 컸던 탓에 전체적인 승리를 놓쳤을 뿐, 권역별 민의를 평균한다면 이번 대선의 사실상 승리자는 宋이라고 할 수도 있다.

19일 열린 宋의 '쭈당(組黨.신당 창당)' 대회에는 1만여명이 모여들어 대선유세 못지않은 열기를 과시했다. 지지자들은 "쑹추위! 쑹추위!" 를 연호하면서 "4년 후는 우리 정권이 출범한다" 는 자신감을 보였다. 단상에 선 宋과 부총통 후보였던 장자오슝(張昭雄)도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마치 대선에서 승리한 것 같은 위세를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宋측 관계자는 "국민당내 인사들이 대거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고 귀띔했다. 宋지지자들이 원래 국민당 인사들이기는 하지만, 이번 대선 참패로 위기감을 느낀 국민당 핵심 인사들이 앞다퉈 宋진영으로 '귀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당 인사들도 언론 접촉을 통해 "우리 당의 주요 인사들이 자꾸만 빠져나가고 있다" 며 당 와해를 사실상 시인했다.

결국 대만 정계는 집권 민진당, 宋의 신당, 쪼그라든 국민당으로 삼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는 5월 20일 민진당 정권이 공식 출범된 이후 만일 양안간 불안이 확대되고, 경제가 불안해진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宋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宋이 사실상 국민당 주요 세력을 모두 흡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타이베이〓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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