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 지원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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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인공어초를 바다에 넣은 것처럼 꾸며 공사비 빼돌리기, 어선을 사들여 어민들에 빌려주고 감척(減隻) 보상금 타내기, 바다 양식장 정화 사업을 맡아 버려진 어망을 치우지도 않고 서류만 작성해 공사비 가로채기….

바닷가 갯마을에 정부 보조금을 ‘눈먼 돈’처럼 빼돌리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어민 소득 증대를 위해 매년 엄청난 규모의 지원사업을 펴고 있으나 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해양경찰청은 전국에서 해양 사업 비리에 연루된 민간 사업자와 공무원을 포함해 383명을 적발하고 이 중 건설업체 대표 김모(46)씨 등 15명을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들은 해양 사업이 바닷속에서 이루어져 확인이 쉽지 않은 점을 노려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에 따르면 구속된 김씨는 2007년 5월 부산시가 발주한 바다목장 조성 공사를 하면서 발주량만큼 인공어초를 바다에 넣지 않고 서류를 조작, 공사비 30억원을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공사를 감독하는 국립수산과학원 직원 이모(47)씨는 업체로부터 99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지원의 유압식 양망기(배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기계) 설치 사업을 맡은 강원도 속초의 선박수리업자 김모(50)씨 등 25명은 2006~2008년 사이 견적서를 부풀려 1억2000만원의 지원금을 빼돌렸다.

이 사업은 정부가 60%, 어민이 40%를 각각 부담하는 방식이지만 이 같은 수법으로 정부가 전액을 부담토록 했다.

2008년 8월 전남 신안군이 발주한 김 양식장 정화 사업을 맡은 건설업체 대표 송모(45)씨는 폐그물이나 해양 폐기물을 치우지도 않고 공사금 3억원을 타냈다. 송씨는 이를 묵인해 주는 대가로 군청 직원에게 1300만원어치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

전북 지역의 한 화공업체 대표 심모(47)씨는 2007년 말 정부의 감척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어선을 구입한 뒤 어민들에게 임대하고는 보상금 3억원을 챙겼다고 한다. 전북 부안군청 간부 류모(57)씨는 2007~2008년 사이 정부의 연근해 어업 구조조정 사업과 관련,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 어선 123척에 대해 보상금 41억원을 불법 집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을 노린 해양 사업 비리는 관련 공무원들과의 결탁으로 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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