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5국' 한발 늦으면 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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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5국
[제4보 (58~66)]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이세돌9단은 죽어도 좋다고 한다. 상대방의 담력을 시험하듯 사활을 건 정면대결로 나오고 있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다. 좌하귀 흑은 죽은 상태지만 지금의 전투를 이용해 백△ 넉점을 엮어 넣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게 흑의 노림이라는 것은 이창호9단도 안다.

먼지 자욱한 정면대결일수록 수(手)의 파장은 복잡해진다.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그 미로에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들다. 어떤 분야든 이 같은 혼돈을 단순하게 파악하고 결정해내는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축복받은 존재다.

이창호9단은 58로 몰아 귀의 반응부터 살핀다. 59로 따내자 (패를 걸겠다는 위협이다) 60부터 외곽을 봉쇄한 뒤 아예 64부터 귀를 바로 잡으러 갔다.

사실 60, 62는 백△쪽에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수다. 그렇지만 한발 늦추면 그대로 나락에 빠지는 현실을 직관으로 읽어내고 망설임없이 목을 베러 간 것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선 기풍이나 성격은 의미가 없다.

A의 약점이 눈에 들어온다. 프로 해설자들은 백이 B를 선수해 두면 흑을 확실하게 잡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창호는 B를 선수하지 않고 아끼고 있다. 목전의 이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런 임시방편의 악수는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이세돌9단의 59는 '참고도'처럼 두는 것이 좀더 강력했을지 모른다. '참고도' 흑1은 일단 한걸음 물러서는 듯 보이지만 C의 패맛이 남아 좀더 끈덕진 느낌을 준다(물론 백도 D로 움직이겠지만).

66에서 볼은 이세돌에게 넘어왔다. (65-이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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