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사로잡는 선거판의 로고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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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제는 바꿔봐요 정치권/행복한 생활이야 해피데이/소신과 당당함으로 서민을 위한 참일꾼 골라봐요.”(엄정화의 ‘페스티벌’)

“더러운 부패정치뿐이야/낡은 지역감정뿐이야/개정 선거법은 인정못해/더는 못참아… 바꿔/바꿔/모든걸 다 바꿔”(이정현의 ‘바꿔’)

총선시민연대가 4.13총선에서 바른 선거문화를 외치며 만든 이 두곡의 로고송은 대중음악이 정치에 미치는 커다란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래가 수용자의 의식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선거라는 한시적 상황속에서 대중의 집단적 일체감을 일으키는데 노래만한 것은 없다. 3분짜리 노래가 무한 반복되며 무의식의 기저를 파고 든다." 가요평론가 강헌씨는 이렇게 그 힘을 설명한다.

대중가요와 정치의 만남은 유서가 깊다.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해공 신익희 후보가 유세기차를 타고가다 전북 이리에서 급서하자 이를 슬퍼한 국민들은 장례식장에서 '비내리는 호남선' 을 읊조렸고, 4년뒤 조병옥 후보 역시 대선 직전 지병으로 타계하자 '유정천리' 가 개사돼 유행했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 이어 60, 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가' '잘살아 보세' 등 관변 가요가 집권 여당의 홍보가로 즐겨 쓰였다.

그러나 야당이나 재야 반체제 인사들은 대중가요는 향락적인 지배문화의 첨병이란 생각에 '위 섈 오버컴' 이나 '김민기' 로 대변되는 저항성향의 포크음악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했을 뿐이었다.

대중음악인들 역시 대중가요가 야당이나 반체제 인사들에 의해 사용될 경우 즉각 금지곡으로 낙인 찍힐 것을 두려워해 철저히 기피했다. 결국 80년대까지 정치와 대중가요의 만남은 '아!대한민국' 같은 '건전가요'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민중문화와 대중문화의 대립구도가 소멸되고 음반사전심의가 폐지되면서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러워지자 여야를 막론하고 입후보자의 이미지를 대중가요에 담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로고송' 이 활성화됐다.

81년부터 각종 정당의 당가와 로고송 수십곡을 제작해온 전문가 이범희 교수(49.명지전문대 실용음악과.작곡가)는 로고송 붐의 또한가지 배경을 이야기한다. "96년 이전에는 후보들이 자신들의 육성을 테이프에 담아 유권자에게 '의정보고서' 명목으로 전달할 수 있어 로고송의 중요성이 크지않았다. " 면서 "그러나 96년을 기점으로 선거법이 엄격해져 후보가 자신을 직접 알리는 방법은 유세 연설말고는 없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 갑자기 노래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 고 회고한다.

때마침 노래방 붐으로 전국민의 가수화가 이뤄지고 대중음악의 힘도 급격히 커졌다. 그래서 기존 히트곡을 개사해 로고송으로 쓰는 후보가 우후죽순으로 불어났다는 것. 96 년 총선에서는 DJ DOC의 '머피의 법칙' ,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 ,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등이 '빅3' 로 인기를 모았다. 독도문제로 한일간 긴장이 고조된 시점이라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도 인기를 누렸다.

98년 대선에서는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 이 DJ의 나이든 이미지를 젊고 활기차게 바꿔주며 로고송의 위력을 과시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김대중과 함께라면 좋아요…" 로 개사된 이 노래로 부동층이던 젊은이들이 돌아섰다고 DJ캠프 관계자들도 인정했을 정도로 이 로고송은 대성공을 거뒀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이번 총선에서는 이정현의 '바꿔' '와' , 엄정화의 '페스티벌' , 컨추리 꼬꼬의 '오 해피' 등이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초선 이상 의원들이 최고 인기곡 '바꿔 '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 유권자들에게 "이번에는 우리지역 의원을 바꿔" 라고 외치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출마하는 정치 신인들이 주로 이 곡을 쓰겠다고 나선다고 한다.

로고송의 기준은 무엇보다 경쾌하고 빠르며 금방 기억돼야한다. 처지는 곡은 유세장에서 손님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 빠르거나 랩이 많아도 안된다.

DJ DOC가 95년 발표했던 '머피의 법칙' 은 가사가 잘 들어오는 '멜로디컬 랩' 이어서 로고송에 적격이었지만 최근 노래에 삽입되는 랩은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운 리듬 위주 랩이다. 그래서 랩 부분은 빼고 멜로디만 개사해서 만든다. 복잡한 전주나 간주 부분이 가지치기 되는 것은 물론이다.

로고송은 선거운동 기간에 집중 사용되는 만큼 제작의뢰도 그 직전에 갑자기 쏟아진다. 그러나 로고송 전문 제작자는 얼마안돼 졸속 제작이 불가피하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 각당 후보자들로부터 5-10곡씩 제작 의뢰를 받은 이범희씨는 "3, 4일만에 음반을 만들어 넘겨줘야 한다.

뒤늦게 제작 의뢰를 한 후보는 음반을 늦게 받아 선거운동기간 마지막날 단 하루만 튼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로고송 가사는 대개 후보자의 참모진이 개사한다. 후보자의 업적을 담거나 노래 중간에 "2번 김00!" 연호를 삽입하는 방식이 많다. 이렇게 바뀐 가사를 7, 8명 규모의 남녀 혼성 합창단이 부르고 반주를 입혀 음반을 만든다.

원곡의 분위기를 살려야 유권자들이 노래를 알아듣고 관심을 가지므로 반주는 원곡과 풀빵 찍어낸 듯 비슷하다. 대부분의 로고송이 선거 당시 인기를 모으는 2, 3곡에 집중되는 만큼 어느 유세장을 가나 똑같은 음악이 들리기 마련이다. 결국 승패는 가사의 참신함에 있다는 얘기다.

이범희씨는 "로고송은 결국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떠는 '애교' 다. 그런 차원에서 로고송을 만들고 들으면 좀 더 명랑한 선거문화가 이뤄지지 않겠는가. " 고 말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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