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쓴 자녀유학일기] 작가 송혜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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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교육면에 '부모가 쓴 자녀유학 일기' 난을 마련했습니다. 자녀를 유학보낸 학부모들이 조기유학을 꿈꾸는 학부모들과 함께 정보를 나누고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유학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나 이국 땅에서의 어려움 극복.실패 등 체험담을 기다립니다. 글은 2백자 원고지 5장 분량. 얼굴 사진도 함께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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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 오하이오주 CCAD(Columbu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다니는 딸 소은(20)이와 통화했다. 소은이와 떨어져 생활해온지 올해로 5년. 1995년 고1을 다니다 조기 유학을 떠난 소은이와 주말마다 나누는 전화통화는 모녀의 정을 확인하고 이어가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소은이는 고1까지 성적이 중상위권인 보통 학생이었다. 미술.운동.연극.춤에 재능이 있어 예능계 대학에 진학시킬 생각이었지만 고액 과외와 비싼 레슨비 부담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다.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입학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3개월. 지금 생각해도 준비기간이 너무 짧아 어떻게 그다지도 무모할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미국에서 조카를 가르치던 대학생 소개로 시카고 근교 가톨릭계 여학교에 입학했다. 당시의 학비는 1년에 5천5백달러. 월 1천달러를 내고 교포집에 하숙을 정했다. 하숙비 대가로는 적지않은 액수였지만 물설고 낯설은 곳에서 그래도 교포가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가디언 역할을 맡은 교포는 너무 바빠 학교 행사에 한번도 참여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접어든 98년 이후엔 소은이는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야 했다. 하숙비를 줄이기 위해 월 5백달러를 받는 미국인 집으로 하숙을 옮겼다.

공부는 주로 야간에 했다. 저녁에 일찍 자고 밤 11시쯤 일어나 새벽 3~4시까지 각종 숙제를 했다. 고3때는 수학을 잘해 표창과 장학금을 받았다.

수학은 한국에서도 과외비를 가장 많이 들이면서도 어려웠던 과목이었다. 소은이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각종 서클활동과 행사에 많이 참여하라" 고 권했다. 미국사회를 피부로 느끼고 적응하는데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은이는 미국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결국 원하는 대학에도 합격했다.

소은이의 유학을 지켜보면서 부모나 자식이나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면 소은이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곤 했다. 아파 누워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너무 보고싶어" 라고 할 때는 엄마로서 죄책감도 심하게 들었다.

소은이는 그럴 때마다 실컷 울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2~3시간씩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엄마, 아빠' 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금전관리의 어려움과 낭비를 우려해 한달에 한번씩 아버지에게 지출 내역서를 팩스로 보내게 해 비싼 달러를 보내주는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하게 했다.

이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유학의 시대다. 단순히 영어만을 배운다는 유학은 실패하기 십상일 것같다. 영어습득이 문제가 아니라 장래가 문제다. 유학을 보내기 전에 자녀가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송혜경 <작가.49.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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