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새 주거 트렌드 ‘1억에 전원 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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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정원근(왼쪽에서 둘째)·박명순(오른쪽) 부부는 “주말마다 강원도 원주에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정원근(55·교사)씨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부인과 함께 강원도 원주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향한다. 주말에 이용하기 위해 올 상반기 장만한 33㎡의 주택과 340㎡의 텃밭이다. 여기에 1억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들였다.

정씨는 “밭작물을 가꾸는 재미와 함께 건강도 얻을 수 있다”며 “은퇴하면 정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처럼 수도권 인근에 작은 전원주택을 마련해 ‘두 집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수도권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농촌에 작은 전원주택을 두고 주말이나 휴일에 텃밭을 일구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건축업을 했던 기노일(62·경기도 양평군)씨는 아예 전원주택에 살면서 동창회 등 볼일이 있는 주말에만 서울 집에서 지낸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이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소득 증가 ▶주 5일 근무제 정착 ▶도로 여건 개선 등에 따라 도시 중산층 사이에서 멀티해비테이션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멀티해비테이션은 도시와 농촌에 거주지를 따로 두거나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원주택이 최근 부쩍 늘어난 곳은 수도권에서 차로 1시간대 거리의 농촌지역이다. 경기도 양평군청의 박창경 생태개발과장은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많은 양서면의 경우 올해 완공했거나 착공한 주택의 70% 정도가 소규모 전원주택”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9244명이던 양서면 인구는 지난달 말 현재 9443명으로 늘었다. 중산층이 즐겨 찾는 분양가 1억원대의 전원주택도 잘 팔린다.

두루지역디자인이 올 4월 강원도 화천군에서 분양한 소형 전원주택 18가구는 한 달 만에 다 팔렸다. 익명을 요구한 이 회사 관계자는 “계약자 대부분이 서울이나 수도권 중·장년층이며, 이들은 대부분 주말에 별장으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원주택 정보 제공업체인 OK시골의 김경래 사장은 “종전에는 투자 목적으로 땅만 사들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에는 사용할 목적이 아니면 분양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원주택 개발업체인 홈덱스 이승훈 사장은 “땅과 집을 합쳐 1억원대의 비교적 싼 전원주택을 찾는 것도 두드러진 경향”이라고 말했다.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전원형 주택을 찾는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도심 개발이 갈수록 고밀화하면서 농촌에 또 다른 집을 두고 이용하는 멀티해비테이션이 대중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정일 기자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도시와 농촌 등 서로 다른 지역에 각각 집을 마련해 양쪽에 모두 거주하는 주거 트렌드를 말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교통 여건이 좋아진 가운데 웰빙 추구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겨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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