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학습 놀이] 엄마는 가베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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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돌만 지나면 엄마들이 야심 차게 구입하는 교육 도구(교구) 중 하나가 ‘가베’(독일 교육가 프뢰벨이 만든 ‘교육용 장난감’). 수십만~수백만원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창의성 발달에 좋다며 엄마들 사이에서 로망이 된 교구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비싸고 좋은 교구라도 잘 활용하지 못하면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반면 제대로만 활용하면 생활 속 재료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베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지혜(33·송파구)씨는 딸 김희주(서울 잠동초 1)양과 가베로 수학 놀이를 즐겨 한다. 희주가 세 살 무렵 가베를 시작했다는 김씨는 두부·빵·바둑 알로도 가베 못지않은 교육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 개념 눈과 손으로 직접 경험해

희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가베로 수학 놀이를 해 왔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7~12세인 초등학생 시기를 ‘구체적 조작기’라고 한다. 김양권(용인 포곡초) 교사는 “이 시기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도구를 활용하면 쉽게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학적 개념을 이해할 때 구체적인 사물을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김 교사는 “실제 도형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수학 공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도구를 이용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가베는 모양에 따라 1가베에서 10가베로 나뉜다. 한국가베교육협회 박현이 강사는 “단계마다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며 “가베를 활용해 재미있게 수학 놀이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베의 단계별 특징에 맞춰 생활 속 재료를 활용해 수학 개념을 익힐 수 있다.

두루마리 휴지 심으로 곡면·평면 차이 배워

1가베는 여러 색깔의 털 뭉치로 구성돼 있다. 구르는 성질을 배울 수 있는 교구다. 털실을 공처럼 뭉쳐 굴려보거나 밀가루로 둥근 도넛을 만들면 구에 대해 쉽게 이해된다. 다양한 재료와 크기별로 공을 만들어 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양말을 동그랗게 말아 굴리면 가베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초등 수학에 나오는 분수의 개념도 익히기 쉽다. 예를 들어 포도 알 6개와 접시 3개를 준비한 다음 “포도 알 6개의 3분의 1은 몇 개일까?” 묻는다. 박 강사는 “세 접시에 똑같이 나누었더니 한 접시에 2개씩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직접 경험하면서 분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육면체·원기둥으로 구성된 2가베는 형태에 따라 잘 굴러가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두루마리 휴지의 심을 활용해 굴려보거나 세워보면 곡면과 평면의 특징을 금세 알 수 있다. 또 심(원기둥)을 자르면 직사각형이 된다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이런 모양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더 찾아봐도 좋다.

3가베는 정육면체를 작은 정육면체로 자른 것. 큰 정육면체를 자르면 몇 개의 작은 정육면체가 나오고 이를 다시 합치면 또 정육면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 빵과 케이크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김씨는 “두부를 크기가 같게 잘라 몇 조각이 나오는지 알아보고 이것을 다시 쌓으면 큰 정육면체가 된다는 걸 확인시켜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와 부분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잘라진 것을 먹으며 분수의 개념도 알 수 있다.

식탁에서 배우니 배도 머리도 두둑해

정사각형과 삼각형, 원 등 평면도형으로 구성된 7가베. 평면도형을 쌓으면 입체도형이 되고, 입체도형을 자르면 평면도형이 되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7가베는 납작한 과자나 색종이로 대신할 수 있다. 피자를 이용해 분수의 크기를 알게 한다. 피자를 똑같이 6조각으로 나눈 후 조각의 크기를 비교해 본다. 6분의 4는 6분의 1이 4개 모인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4배 크다’는 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8가베는 여러 가지 길이의 막대로 구성됐다. 빨대나 수수깡, 얇고 긴 모양의 과자 등은 좋은 8가베 재료다. 수수깡이나 빨대로 집안에 있는 물건의 길이를 재보면 배수 개념을 배울 수 있다. 단위 길이의 개념도 알 수 있다. 먼저 아이의 키를 벽에 표시한 후 10㎝ 길이로 자른 여러 개의 수수깡을 이어 붙인다. 김씨는 “수수깡이 10개가 된 곳을 표시해 10㎝가 10개면 1m가 된다는 걸 설명한다”고 말했다.

10가베는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되는 성질을 배운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며 면이 모여 입체가 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점토를 작게 뭉쳐 이쑤시개로 연결하면 뚫려 있는 정육면체 모양이 나와 쉽게 이해가 된다. 쌀이나 콩, 바둑알로 대신할 수도 있다. 콩과 색종이를 준비해 구구단의 배수 개념을 익혀 본다. 먼저 색종이로 종이배 10개를 접는다. 박 강사는 “이때 종이배는 배(倍)의 개념이 돼 이해가 쉽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콩 2개가 담긴 종이배가 4개면 8이 된다는 식이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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