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피플] 걸어서 태평양횡단 도전한 브리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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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발이 물 속으로 빠지기 전, 잽싸게 다른 한발을 내디딘다. "

만화속에나 나올 얘기지만 한 프랑스인이 태평양을 걸어서 횡단하겠다며 지난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마리나 델레이 항구를 출발했다.

'태평양 걸어서 건너기 - 6개월 대장정' 에 돌입한 주인공은 레미 브리카(50).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 살고 아내와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지만 그의 취미는 망망대해에서 고독을 즐기면서 걷는 것이다.

대장정에 동원되는 장비는 카누 모양의 발 스키와 긴 노, 그리고 허리에 로프로 묶어 끌고 가는 조그만 보트가 전부다.

이 보트는 레미 브리카의 침실 겸 식당으로 여기에 실린 것은 식량.방수용 침구.식수.구급약이 전부다. 그가 시도하는 태평양 건너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시드니까지로 총거리 12만4천8백여㎞에 달한다. 하루 14시간씩 꼬박 물위를 걸어 아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6개월이 소요된다.

브리카는 태평양 횡단 이유를 "인생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뭔가 보람된 꿈을 실현하고 싶다" 고 말한다. 그의 모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8년 그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트리니다드까지의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물위에서 가장 오래 걸은 사람' 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그는 이때의 경험과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90년 '물위를 걷는 사람' 이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브리카의 이번 태평양 횡단은 알자스지역의 한 식품제조회사가 후원했다.

이 식품회사는 경비지원은 물론 자사 웹사이트(http://www.stoeffler.com)에 인공위성을 통해 파악한 브리카의 현위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줄 방침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브리카의 이같은 시도에 대해 고개를 내젓고 있다. 태평양은 대서양에 비해 훨씬 험난하고 특히 3, 4월은 1년 중 일기가 가장 불안정한 때여서 언제 어떤 기상재난이 닥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평양 망망대해에선 5층 건물 높이의 파도더미나 시속 1백㎞에 가까운 강풍, 빠른 조류가 발생하는 게 다반사여서 그런 걸 만나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브리카가 대장정에 오른 지난주 '출발점인 마리나 델레이 '항구에는 40여명이 모여 그의 장도를 기대와 우려가 섞인 가운데 바라봤다.

이들 대부분은 브리카의 안전을 기원하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을수 없다' '미친짓'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여성은 마치 자기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브리카는 그러나 그런 반응에 아랑곳 않고 태평양에 발을 내디뎠다. 그가 과연 태평양을 걸어서 횡단한 역사상 최초의 사람이 될지, 아니면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최악의 경우 무모한 모험을 하다 목숨을 내던진 인물로 기록될지는 미지수다.

검푸른 태평양에서 절대 고독과 마주하며 사투를 벌일 그의 모험은 그래서 더욱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지도 모른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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