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4·13, 소용돌이의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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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13 총선에는 한국정치를 구성하는 인물.변수.상황등이 총출동되고 있다.

그 속에서 3金씨의 노련함 또는 노회함과 386세대 후보들의 어려운 현실적응이 대비되고 있으며 새 정치의 이슈들은 지역감정.색깔론 등 낡은 쟁점들에 밀려 허덕이고 있다.

이런 요소들의 혼재와 충돌은 선거를 소용돌이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소용돌이의 한복판엔 여야 4당의 선거 사령탑과 함께 여전히 3金씨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전략 카드에 담긴 복잡한 계산법은 소용돌이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든다.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이 이끄는 '소수 정권' 의 장래가 이번 총선에 걸려있다. DJ정권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강야(强野)의 출현이다. 소수정권은 강한 야당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야당이 나뉘어 있어야 국정운영의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쥘 수 있다. 선거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정권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 명예총재가 충청권에서 올리는 기세는 DJ정권에 여유를 줄 수 있다. JP가 DJ를 거칠게 비난할 수 있는 것도 민주당의 그런 처지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의 고향 논산 출마는 그의 정치적 야심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충청권 선거를 민주당과 자민련의 대결로 규정하려는 고육지책도 엿보인다.

JP쪽과의 싸움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떨어져도 좋으며, 다만 한나라당이 끼지 못하도록 한다는 사석(捨石)작전의 면모다. JP가 버티는 충청권 링에 이인제 위원장이 먼저 올라가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제치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총선은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되살려 주고 있다. YS가 말해온 '기회의 괴물(怪物)' 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문민정권 5년의 재평가다.

민국당 조순(趙淳)대표가 "IMF는 문민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고 여야의 공동책임론을 주장한 것은 YS의 그런 마음을 알아서다.

이회창 총재는 공천파동으로 당세를 떨어뜨렸지만 아직도 여건이 유리한 편이다. 의석수 제1당으로 총선을 치르는 것은 50년대 민주당, 60~70년대 신민당, 85년 신한민주당의 야당 시절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다.

총선정국의 불안정을 제거해 승리하면 그는 대선고지로 바짝 다가설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엔 정치적 역량과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3金씨와 'DJ 이후' 주자들은 그만큼 절박하다. 이들이 섞여있는 선거상황에선 빛바래고 귀에 익숙한 이슈와 이미지들이 득세하게 마련이다. 정책과 인물논쟁은 풀이 죽기 쉽다. 그런 소용돌이를 과연 누가 정리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며 권한이다.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의 선거개입 효과는 낙천운동에서 드러났듯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낙천운동으로 가장 재미를 본 쪽은 당내 장악력을 높인 각당의 보스들이었다.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 투표성향의 퇴치에 총선연대가 뛰어들었지만, 기대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정치에선 아직 3金의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연.지연.학연의 맥이 살아 움직이는 탓이다.

"지역감정 타파 발언이 오히려 지역감정을 확대하는 특징이 있다" 는 이용훈(李容勳)중앙선관위원장의 지적은 적절하다.

선거상황의 혼탁을 질타하는 발언 역시 비슷한 역설을 낳곤 한다. 질타의 강도가 높으면 흙탕물 선거에 끼여들지 않으려는 유권자의 정치 무관심도 커지기 쉽다. 투표율 저하를 초래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만큼 총선정국은 미묘하고 민감하다. 유권자들의 심리도 비슷하다. 아무튼 이번만큼 유권자의 한 표가 위력적인 경우는 흔하지 않다. 총선정국에서 국민은 우리 정치의 혼란과 불안정을 정리해 주는 힘을 어느 때보다 크게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있고 힘 있는 선택의 기회인 것이다.

박보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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