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떨어진 고교선택제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한 고교선택제 모의배정 결과, 1·2차 지원 미달학교가 총 14(공립6, 사립8)개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온실 속에서 지내온 일반고가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정글에 내던져진 셈. 고교선택제를 앞두고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에 나선 학교들을 살펴봤다.

“발등에 불 떨어졌죠. 인근 중학교를 대상으로 학교 설명회도 시작했습니다. 학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중학생 대상 캠프나 장학제도 확충 등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상일여고 전경열 교감은 올 12월 실시되는 고교선택제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도심에서 먼 학교 위치 때문에 중3 학생과 학부모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상일여고는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올 초부터 30대에 이르는 소형 스쿨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또 처음으로 인근 12개 중학교에서 학부모 설명회도 가졌다. 서울진학지도협의회 부회장인 전교감이 나서 입학사정관제 대비법과 진로지도 설명회를 진행했다. 전 교감은 “우리 학교는 자체개발한 개인별 맞춤형 진학지도 프로그램을 지역 교육청에 보급할 정도로 진학지도 실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인근의 상위권 중학생들을 학교로 초청해‘영어로 진행하는 이색 문화체험’ 행사도 가졌다. 중학생 대상 상일 미술영재학교도 운영 중이다. 예술고와 같은 커리큘럼으로 2개의 미술 특성화반을 운영해온 노하우에 힘 입은 것. 실제로 상일여고는 2009학년도 입시에서 홍익대 미술대에 9명을 진학시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자율학교 지정을 준비하고 있는 영동일고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다. 교사 1인 1강좌 개설을 원칙으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또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주말에도 방과후수업을 개설, 사교육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성적 우수자 특별관리 시스템도 고안했다. 오전 6시~ 8시까지, 정규 수업 이후~ 밤 11시까지 별도의 학습실에서 자율학습이 이뤄진다. 학습 저해 요소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이동시간을 줄여 학습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재단의 대대적인 투자로 전 교실 멀티미디어 시설을 확충하고 입시 체육 수업을 위해 최근 강당 시설도 개선했다.

공립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5개의 자율형 공립고를 지정함에 따라 공립고마저 경쟁 환경에 노출된 것. 이번에 지정된 자율형 공립고는 전기 모집군에 들어가는 자율형 사립고와는 달리 기존의 개방형 자율고와 같이 후기에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후기 일반계고와 동시에 지원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탈락한 학생은 자동으로 후기 일반계고 2차 선발로 넘어간다.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등촌고의 임국택 교감은 “공립고도 일정수준의 경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조기졸업반 운영, 수준별 이동수업 등 주어진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해 인근 학교와 경쟁 하겠다”고 밝혔다. 등촌고는 2010학년도부터 기존의 문·이과 계열을 어문·상경·자연공학·과학중점 계열로 세분화할 계획이다. 전 과목 수준별 이동수업을 위해 교과교실제를 실시하고 심야 자율학습도 자정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또 내년 말까지 기숙사 건립을 추진 중이다.

도봉고는 교과목별 유급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다소 파격적인 자구책을 선보인다. 최저 성취기준에 미달한 과목은 이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최악의 경우에 유급조치도 불사하겠다는 것. 이 학교는 매학기 시작 전에 선착순으로 인터넷 수강신청을 하는 선택교과과정도 운영할 예정이다.

< 김지혁 기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