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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실련 '혈세 지킴이' 운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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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연합회가 지난 3일 납세자의 날을 맞아 선정.발표한 '1999년 최악의 예산낭비 10대 사례' 는 실로 충격적이다.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를 막론하고 예산낭비와 용도외 전용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말끝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를 내세우며 공공부문 개혁을 외치고 있는 '국민의 정부' 아래서 이같은 구태(舊態)가 버젓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건설교통부 산하 6개 기관들이 설계변경으로 낭비한 예산만 3조원이 넘는다니 기가 차다.

물론 경실련의 조사내용이 모두 정확할 수는 없고, 당국 입장에서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예산을 설정하거나, 적은 예산으로 먼저 사업을 확보해 놓고 나중에 예산을 증액하는 방식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

정부조직을 개편한답시고 46억원을 들여 민간컨설팅회사에 경영진단을 맡겼다가 천금같은 용역결과가 휴지가 되고만 사례는 기억에도 새롭다.

새천년 맞이 행사는 전시성.일과성 유사(類似)행사의 남발로 3천여억원이나 소요됐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도시 자영업자들의 소득 상향신고를 유도하느라 5개월 동안 홍보비로 4백2억원을 썼다. 그러고서 올린 보험수입액이 21억원이라니 이런 비효율과 낭비가 없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리한 씀씀이나 전시효과적 낭비벽 또한 중앙정부에 조금도 못지 않다. 빌딩을 거창하게 지어놓고 예산낭비라는 여론의 비난이 일자 공사비를 줄이느라 주차장을 턱없이 적게 만들어 주차난을 자초하는 경우, 관용차량의 절반 이상을 연간 1백일도 운영하지 않아 시민예산을 잠재우는 경우, 청소원보다 관리자가 많은 회사에 청소대행을 맡기는 등 크고 작은 예산낭비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게다가 실.국별로 배정된 예산을 장관이나 기관장의 판공비로 전용하는 사례도 계속 잇따르고 있다. 소요예산을 부풀려 따놓은 다음 쓰고 남은 불용(不用)액을 줄이느라 외유성 출장에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엎어 새 것으로 바꾸는 등 국민세금의 낭비관행은 어디 하나 둘인가.

납세자의 날을 맞아 경실련이 납세자 입장에서 '국민혈세 지킴이' 운동을 전개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 전국의 지역조직 30여곳을 활용해 예산 감시활동을 본격화한다고 한다.

부당하고 잘못된 세금에는 항의하고, 납부된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를 감시하는 것은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다.

선거를 의식한 각종 선심용 예산집행 역시 결국에는 예산낭비로 그 부담이 납세자에게 되돌아온다. 따라서 언론과 시민단체가 연계해 이에 대한 지속적 감시와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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