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잇단 '무리수 수사'] 無許 업주 범죄단체 두목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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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찰의 무리한 수사와 법 적용이 잇따르고 있다.

단순히 무허가 영업을 하며 바가지를 씌운 단란주점 업주와 종업원을 조직폭력배의 두목과 행동대원으로 모는가 하면 수사 편의를 위해 확인되지도 않은 혐의 내용을 구속영장에 버젓이 삽입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거나 적용 죄목을 변경하는 등 경찰의 무리한 수사 태도에 제동을 걸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수사를 위해서라면 인권침해도 불사하는 경찰의 태도도 한심하지만 이를 걸러내지 못하는 검찰도 문제" 라고 꼬집었다.

서울지법 김동국(金東國)영장전담 판사는 지난 2일 단란주점 업주 金모(28.여)씨와 종업원 林모씨 등 6명에 대해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신청한 구속영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찰이 "상습적으로 취객을 유인해 가짜 양주를 판 뒤 위협해 바가지를 씌웠다" 며 이들에게 범죄단체구성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조직 이름은 단란주점 상호를 따 '삐에로파' 로 붙여졌고 업주는 두목, 마담은 행동대장, 종업원들은 행동대원으로 돼 있었다.

범죄단체구성죄는 조직폭력배를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두목의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고 가담자들도 2년~무기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다. 이 때문에 검찰도 흉악한 조직폭력배들에 한해 신중히 적용하고 있다.

金판사는 업주 金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각했다. 金씨의 영장도 경찰이 첨부한 '범죄 사실' 을 모두 삭제한 뒤 식품위생법 위반 조항만 새로 작성, 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이 청구된 구속영장을 새로 만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金판사는 "업주 金씨가 무허가 영업과 터무니없는 술값에 항의하는 손님들을 위협한 사실을 제외하고는 입증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며 "사기죄를 지은 사람을 살인으로 영장을 청구한 것과 같다" 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경찰이 조직폭력배 검거 실적에 지나치게 집착해 벌어진 일" 이라'며 "하지만 경찰이 무리한 법 적용을 했더라도 지휘 검사가 걸러줬어야 한다" '고 꼬집었다.

동대문경찰서측은 "업주 金씨와 종업원들이 역할 분담을 한 뒤 손님들을 위협한 것으로 파악됐다" 며 "이러한 사안에 범죄단체구성죄를 적용한 것은 경찰의 관행" 이라고 밝혔다.

최현철.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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