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수원감독 영화 '철도원' 닮은꼴 외길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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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영화를 보다 어떤 장면에서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주연 배우와 닮았다거나, 주인공의 행동이나 생각이 어떤 사람과 정말 비슷하다거나 하는 느낌. 우리는 주인공과 '그' 를 동일시하며 유쾌한 상상에 젖는다.

장안의 화제인 일본영화 '철도원' 을 본 축구팬들은 주인공 오토(다카구라 켄 扮)와 닮은 우리 시대의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김호(56.수원 삼성)감독이다.

한량(輛)짜리 디젤 열차가 하루 세차례만 다니는 시골 간이역을 일평생 지켜온 오토처럼 김감독은 축구 외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오토가 "철도만 알았지 그것 말고 내가 아는 게 뭐 있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김감독도 "내가 할 줄 알고, 잘 할 수 있는 건 오직 축구뿐" 이라고 늘 말해왔다.

그러기에 그는 단 한번도 다른 일에 한눈팔지 않고 축구 외길을 걸어왔다.

'남보다 세 배는 노력해야 남보다 잘 할 수 있다' 는 좌우명을 선수시절 내내 실천했고, 지도자 초년병 때는 성적 좋은 팀 훈련방식을 숨어서 지켜보기도했다.

아이와 아내를 일찍 저 세상에 보낸 오토가 결코 쓸쓸함을 내비치지 않은 것처럼 김감독도 '꼿꼿한 외로움' 을 지켜오고 있다.

그는 1년 중 2백50일 이상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숙소에서 지낸다. 시즌 중에는 경기 녹화 비디오를 보다 소파에서 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편해지면 반드시 팀에 허점이 생긴다" 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감독은 '블루윙즈' 라는 팀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공식 경기에서는 항상 붉은색 점퍼를 입고 벤치에 앉는다. 어느 역술인이 그렇게 권했다고 한다. 남들은 '미련한 행동' 이라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기를 이길 수만 있다면 반칙 외엔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감독의 '단순성' 을 보여주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더 있다. 60년대 중반 제일모직에서 선수생활을 할때. 전국대회에서 계속 우승하자 회사에서 선수들에게 특별 하사금을 내렸다.

선수들은 대부분 집이나 땅을 사는 등 '재테크' 를 했지만 김감독은 "이 돈은 회사에서 우리가 더 축구를 잘 하라고 준 돈" 이라며 한 푼도 빼지 않고 한약방에 가져가 보약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오토는 호로마이역의 등까지 다 끈 후 병원을 찾아 결국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다.

그러고는 "내가 홈에서 깃발을 흔들지 않으면 누가 기차를 유도할텐가" 라고 말한다. 영점 남편의 전형이다.

김감독에게 '혹시 경기 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 물으니 그 역시 벽창호같이 "안 갑니다" 라고 했다.

1967년 월남전이 한창일 때 그는 국가대표로 월남의 국제경기에 참가했다. 결승전을 앞두고 그는 친형인 김경수 중위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시신을 확인하고 돌아온 그는 곧바로 경기에 나섰고 시합이 끝나고 나서야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관객들의 소리없는 흐느낌과 끊임없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영화 '철도원' 은 일본적 가치관과 가미카제식 맹목성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김호 감독도 때론 '독선주의자' 라는 평가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한 길만을 옹골차게 걸어왔으며 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임엔 틀림없다.

그는 '한국축구' 라는 열차를 향해 오랫동안 꼿꼿하게 서서 깃발을 흔들 '철도원' 일지도 모른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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