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전망대 데스크진단] 불붙은 '野性'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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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한나라당을 유일 야당으로 부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는 연일 자민련의 야당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1여3야인가, 3여1야인가."

지금 정치권에선 정체성 논란이 한창이다.

한나라당이 1여3야란 말에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것도, 자민련이 2년동안 공동여당의 혜택을 한껏 누리다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길' 로 급선회한 것도 보다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서다.

4당 중 1여3야를 강력히 부인하는 곳은 한나라당뿐이다.

민주당은 야당표가 분산되는 현상이 전혀 나쁠 게 없고, 자민련은 야당성을 강조해 충청권 표와 보수층을 흡수하려 한다.

민주국민당(가칭)은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영남지역을 잠식하지 않고서는 살 길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야당' 임을 강조한다.

공천 후유증에 휩싸여 갈피를 못잡던 한나라당이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신4당체제가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위기를 느낀 한나라당은 "자민련과 신당은 야당표 잠식용 들러리 집단에 불과하다" (李思哲대변인)며 3여1야 구도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신당은 민주당의 2중대" 란 주장이다.

이에 민국당은 "야당 분열의 책임은 이회창 총재에게 있다" 고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김덕룡(金德龍)부총재 등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지도부가 야당 분열의 책임을 져야 한다" 고 지적했다.

민국당이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종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한나라당의 공천 후유증 탓에 생겼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3여1야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래야 반(反)DJ표를 '독식'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흥미로운 대목은 민국당의 김윤환(金潤煥).이기택(李基澤) 최고위원이 "李총재가 배신했다" 며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JP측도 "金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고 한다.

자민련과 민국당은 각각 몸담았던 곳의 최대주주로부터 "배신당했다" 는 감정을 내세워 야당의 길로 나선 셈이다.

동정심을 최대한 유발하려는 몸짓이다.

"자민련은 선거가 끝나면 다시 민주당과 공조할 것" 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김용환(金龍煥)의원의 한국신당은 "자민련의 2여공조 파기는 위장이혼" 이라고 규정했다.

金대통령도 "자민련의 공조 파기는 선거 때문이며 선거 후 공조가 복원될 것" 이라고 했다.

자민련만이 스스로 야당이라고 외치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JP는 갈수록 金대통령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일야당론' 과 '3야론' 중 어느쪽 손을 들어줄지는 유권자들 몫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도 한 쪽에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총선 판도가 형성되는 것을 당분간 침묵 속에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김두우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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