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걸리는 FTA 재협상보다 빠른 타결이 미국차에 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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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미 FTA 자동차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GM대우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제이 쿠니 GM대우 부사장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차가 미국에 연간 80만 대를 수출하는 것에 비해 미국산 수입차는 한국시장에서 불과 5000여 대밖에 팔지 못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며 “이런 무역 불공정이 개선되는 형태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 의제로 의료보험 개혁이 1순위이고 그 다음이 실업률을 10%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한·미 FTA 비준은 국정 어젠다의 3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측이 한·미 FTA 재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지는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시장을 더 개방시키는 것보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진출을 막으려는 의도가 크다는 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자동차 시장을 더 개방하는 것보다 한국자동차의 미국 시장 수출 확대를 막는 데 더 관심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형차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두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 수입자동차 업체들은 “FTA 재협상보다는 빠른 타결을 바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미 FTA가 양국 의회에서 비준이 되면 당장 미국 수입차에 붙는 관세(8%)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를 더 얻자고 FTA 타결이 늦춰지는 것보다 하루빨리 한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차를 더 많이 파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지난달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포드 토러스의 대당 가격은 약 4400만원이다. 관세가 없어지면 4000만원 언저리까지 값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현재 가격으로는 현대차의 제네시스가 경쟁차이지만 FTA로 관세가 없어지면 그 아래 급인 그랜저와도 해볼 만한 경쟁력이 생긴다는 게 포드코리아 측의 계산이다.

미국 수입차 업체들은 FTA 협상에서 자동차 ‘원산지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FTA로 미국산 수입차가 모두 관세가 면제되면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보다는 미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다른 나라 자동차가 더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의 빅3만 한국 수입차 시장 점유율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자동차를 조립할 때 미국산 부품을 최소 70%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원산지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에서 파는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는 일본 공장에서 생산해 한국에 수출하는 차다. 그런데 한·미 FTA가 비준되면 일본 수입차 업체들은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차로 대체해 수입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닛산코리아 알티마의 경우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수입자동차 업체 사장은 “현 상태로 한·미 FTA가 비준되면 미국에 공장을 둔 일본 자동차 업체가 혜택을 더 많이 볼 가능성이 커 ‘원산지 규정을 강화해 달라’는 요구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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