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다윈은 왜 진화론을 손에 쥐고도 발표를 꺼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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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다윈 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지음,김명주 옮김
뿌리와 이파리, 1296쪽, 5만원

찰스 다윈을 다룬 책들은 으레 진화론의 발상에 무게를 뒀다.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해 진화론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활약상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뭇 다르다. 천재 과학자의 모습을 잠시 잊으라. 대신 자신의 발견이 끼칠 사회적 영향을 고민하는 지식인 다윈을 만날 수 있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1839년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적어도 기득권자인 국교도들의 눈에는 혁명 전야로 비쳤다. 사회주의자들과 급진론자들은 국교회(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를 부패했다고 공격하고, 자본주의를 착취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면서 체제 전복을 꾀했다. 당시 공직이나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될 수 없는 등 차별을 받았던 비국교도들은 국교도들의 특권은 물론 그들이 가진 자연관까지 함께 비난했다. 그들은 기존의 과학이 성직자들과 내통해 그들을 옹호하는 도구가 됐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특권을 배격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법칙이자 신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때에 ‘진화론’을 발표한다면 기득권층 국교도들에게 타격을 주고, 혁명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게 마련이었다. 문제는 다윈이 무신론자도, 급진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기득권자였다. 국교도의 아성인 케임브리지대에서 교육받았으며, 한때 시골 교구에서 성직을 맡으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적 지위, 안락한 생활, 풍부한 유산, 그리고 투자로 불린 돈을 결코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여성의 맥을 짚고 있는 다윈. 그를 조롱하기 위해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로 그린 점이 눈길을 끈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그는 ‘종은 결코 영구 불변하지 않다’는 자연과학적인 결론에 이르렀지만 이를 발표하는 것은 “살인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토로했다. 다윈이 이를 발표하던 당시 기득권층의 시각으로는 진화론은 일종의 사회적 범죄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너무도 고민한 나머지 편두통과 구토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국교도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지은이들은 자연과학자와 사회적 기득권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윈을 마치 햄릿처럼 묘사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다윈의 결론은 “어떠한 종류의 신학에도 구속되지 않고 과학에만 헌신하면서 진화론에 입각한 자연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중립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다윈은 영국의 위인들이 묻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면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다윈 내면의 갈등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양날의 칼로 파헤친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두 사람의 지은이 가운데 데스먼드는 자연과학자이고, 무어는 다윈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 사상과 종교개혁운동 전문가라는 점도 이러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책이 두꺼운 만큼 참고한 자료도 그만큼 풍부하다. 여기에는 다윈이 쓴 수많은 편지도 포함됐다. 한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열렬한 유신론자인 동시에 진화론자가 될 수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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