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인의 천국' 서울 지하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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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지하철 풍속도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전동차내 잡상인. 이들은 하루 평균 승객이 4백70만여명에 이르는 서울 지하철을 무대로 뛴다. 지하철이야말로 돈 안드는 최고의 상권(商圈)이기 때문이다.

일부 승객들은 잡상인들로부터 물건 사는 기회를 제공받지만 많은 시민들은 조용한 승차 분위기를 방해받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부터는 핸드폰.신용카드 회사 등 잘나가는 대기업들조차 지하철내의 판촉경쟁에 가세해 승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시민 고영균(32.회사원.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지하철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그같은 일이 이만저만 짜증나는 게 아니다" 며 불쾌해 했다.

◇ 실태〓지난 한햇 동안 서울 지하철 전동차나 역 구내에서 불법 영업을 하다 적발된 사례는 6만7천3백82건. 1998년의 5만4천1백98건에 비해 24%나 늘어났다.

한산한 대낮에만 영업을 하던 외환 위기 이전과 달리 지난해부터는 아침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내내 장사를 하고 다닌다.

품목도 앨범.허리띠.접착제.카세트.알람시계.색연필.공구세트 등 가지각색. "음식물 빼고 안 파는 게 없다" 는 게 지하철공사 잡상인 단속 담당자의 설명. 5명 중 1명꼴이 여자로 여성도 부쩍 늘었다.

상당수가 판매조.바람잡이조 등으로 이뤄져 있고 영업구역도 엄격히 구분돼 있다는 것. 판매 품목이 서로 다른 2인 1조가 승객이 많은 지하철역에 모여 순번을 정한 뒤 우선 첫팀이 바람잡이 2~3명과 함께 먼저 지하철에 오른다.

판매조 중 1명은 전동차를 훑으며 단속반원이 있는지를 핸드폰으로 연락해 주고 나머지 1명은 바람잡이들이 타고 있는 칸에서부터 물건을 판다.

바람잡이들은 상품 소개가 끝나자 마자 물건을 사면서 다른 승객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맡는다.

◇ 문제점 및 대책〓잡상인들이 파는 물건 중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불량품이 많다는 지적이다.

교환이 불가능해 피해는 구매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서울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하루 7백여명이 단속에 나서지만 물건을 압수할 수 없는데다 2~3만원의 범칙금만 내면 풀려나 잡상인 근절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도시철도공사 담당자도 "지하철 수송분담률이 높아지면서 잡상인도 급증추세" 라며 "승객들이 물건을 사지 않는 게 유일한 대책" 이라고 하소연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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