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박창배 증권거래소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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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변혁' 이란 단어가 증권시장을 흔들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 역전현상은 이미 굳어져 가고 있고, '주가〓기업 내재가치' 라는 등식도 낡은 셈법이 돼 가는 느낌이다.

대신 벤처나 미래가치란 용어가 커다란 힘을 발휘하며 시장을 휘젓고 있다. 이같은 격랑 속에 거래소와 코스닥은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다.

거래소는 투자자들의 이탈로 전전긍긍하고 있고 코스닥시장은 손님이 많아져 좋기는 하지만 전산시스템 등이 완비 안된 상태에서 덩치가 너무 급작스레 커지는 것이 영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증권거래소는 지난주 부랴부랴 증권시장 균형발전 방안을 마련, 발표했다.

증권거래소의 박창배(朴昌培)이사장과 코스닥 증권시장의 강정호(姜玎鎬)사장을 만나 바람직한 증시 발전방안을 들어봤다.

- 투자자들이 최근 코스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거래소 상장기업들의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기업들의 자금 조달도 힘들어졌습니다.

"코스닥의 활황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정보통신 산업이 각광받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벤처기업 발전이 국가 경제에 큰 몫을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요.

실제 벤처기업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일자리도 많이 늘고 있고요. ' 다만 돈이 코스닥시장으로만 몰려 국가의 기간산업이 모여 있는 거래소시장이 공동화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두 시장이 함께 커나가는 것이 필요하지요. "

- 지난주 발표된 '증권시장 균형 발전 방안' 이 시행되면 거래소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발표된 내용은 즉각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아닙니다. 거래소의 체질을 튼튼히 하는 일종의 '보약' 같은 것들이지요. 다만 거래소시장이 위축된 것을 계기로 상장사들로 하여금 주주 이익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 기업들이 고율 배당과 자사주 매입.기업설명회 개최 등 주주를 중시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

- 이번 발표에 수요를 늘릴 대책이 빠져 약효가 의문시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래소가 주식 수요를 진작시키는 대책까지 내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을 만들 의무가 있고 제도개선 등을 통해 투자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일만 하면 된다고 봅니다. "

- 발표 내용을 보면 자본잠식 기업이라도 성장성이 인정되면 상장시킨다는 것이 포함돼 있습니다. 코스닥시장과 경쟁해 벤처기업도 본격적으로 유치한다는 뜻입니까.

"상장조건을 완화한 것이 아니라 다양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소규모 벤처기업을 마구잡이로 상장시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해당 업계에 잘 알려져 있고 성공 단계에 진입한 벤처기업이 상장을 원할 경우 이들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통신업체들처럼 사업 초기에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경우는 일정기간 적자가 불가피하지요. 그러나 곧 수익성이 호전돼 상장 후 충분히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면 굳이 상장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

- 최근 우량기업 유치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중 상장될 회사는 몇개나 될까요.

"50여개사를 상대로 의사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기업 이름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알 만한 대형 정보통신 업체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까지 10여개사 정도가 상장을 희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자주 거론되고 있는 야후코리아 등은 특혜를 주면서 상장을 허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주식 분산이 안된 상태에서 상장되면 거래도 없이 주가만 오르는 기형적인 주식이 될 수 있습니다."

- 투자자 편의를 위해 점심시간에도 매매를 하고 야간시장 개설도 준비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장 종료 후 매매시간을 1시간 연장하는 문제는 없던 일이 되는 겁니까. 야간시장 개설은 언제쯤이나 가능한지요.

"점심시간 매매와 장 종료 후 매매시간을 1시간 늘리는 것은 별도 사안입니다. 매매시간 추가 연장은 계속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다만 이브닝 마켓(야간시장)개설은 아직 구체화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전산시스템을 구축한다 해도 연내에 성사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노조의 반대가 문제지만 거래시간 연장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코스닥시장이 이미 점심시간이 없이 거래되는 만큼 노조가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

- 외국기업의 거래소 상장을 위해 추진 중인 일은 무엇입니까.

"실질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습니다. 외국 기업을 우리 시장에 상장시킨다는 것은 외화 유출의 문제가 있는 만큼 사실 그동안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또 정부의 외환정책과 연계된 문제인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요. "

- 코스닥증권 사장도 역임하셨는데 두 시장이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거래소와 코스닥은 경쟁이 아닌 보완관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는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거래소는 투자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고 상장 기업에 대한 자료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건실한 시장이 돼야 합니다. 코스닥시장도 벤처기업들의 등록이 늘어 규모도 지금보다 더 커지고 시스템도 안정되는 등 발전할 여지가 많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특정시장에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될 것으로 봅니다. "

- 가격제한폭을 15%에서 20%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데.

"20%로 올리는 방안에 대해 내부적인 검토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이 상당히 불안한 상태여서 시행할 경우 충격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 상황을 좀 더 보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

- 시장관리자로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최근의 시장변화 추세를 우리도 알고 있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보다 매력적인 시장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도 미래가치와 더불어 기업의 내재가치를 잘 따져보고 투자하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합니다. "

송상훈.김원배 기자

<약력>

▶1939년 전북 익산 출생

▶63년 8월 서울대 상학과 졸업

▶77년 8월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63년 11월 한국증권거래소 입사

▶88년 4월 한국증권거래소 전무

▶94년 4월 한국증권금융 상임고문

▶98년 6월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99년 4월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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