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하라 다케시 '직소와 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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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천하는 군(君)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민(民)을 위해 있다' 는 민본(民本)사상은 유교경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이는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사상적 근거이기도 했다. 유교는 한.중.일 3국 모두에 강한 영향을 미쳤지만 민본사상이 단순한 이념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백성이 임금에게 직소(直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조선왕조는 단연 두드러진다.

이같은 직소와 왕권과의 관계를 기본축으로 다루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민본주의 사상사를 분석한 일본 학자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하라 다케시(原武史)가 쓰고 김익한.김민철씨가 번역한 '직소와 왕권' (지식산업사.1만원)은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 천황으로 권력을 결집키위해 나타난 이른바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 이 조선시대에서는 건국초기부터 계속 존재해 왔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신문고에서 부터 어사의 파견, 임금이 궁궐밖으로 나가는 행행(行幸)이나 도성과 궁궐문밖에서 백성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임어(臨御), 임금의 행차시 백성들이 소장을 직접 전하는 상언(上言)과 꽹가리를 두드리며 말로써 뜻을 전하는 격쟁(擊錚)이 이같은 '일군만민' 의 사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념은 특히 신권(臣權)에 비해 왕권이 강했던 시기에 두드러지며 저자가 주로 분석한 조선후기의 경우 영.정조와 고종대가 그런 시기라고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도 인용하고 있듯 정조의 경우 25년의 재위기간동안 3천2백17건의 상언과 1천2백98건의 격쟁이 있었고 그 주체도 하층양반뿐 아니라 중인.천민도 다수를 차지했을 정도로 그야말로 '일상의 일' 이었다.

이후 19세기에 빈발한 민란들과 동학혁명도 이처럼 세도정치에 의해 군.민간의 직접적 연결이 가로막힌데 대한 반발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한국사 전공이 아닌 일본인 학자가 쓴데서 비롯되는 적잖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일 근대정치사에 대해 흥미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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