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어 폭력가'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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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진중권씨의 글과 그의 앞날에 대한 우려

근래 들어 과거 군사정부 아래서의 갖가지 인권탄압 사례와 더 나아가 한국전과 베트남전에서의 양민학살 등 우리 국가체제내 공권력의 어두운 면이 유난히 조명돼 많은 사람들 앞에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두가 당시의 대통령이 직접 시켜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그 시대 권력의 취향을 알고 미리 그들의 마음에 드는 성과를 내어 눈에 들려했던 자들이 자행했거나 인간인 이상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도 있을 판단력 결함이 있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 확률적 사건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는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과거 우리의 국가체제에 책임이 없다고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그들 행위의 주체들이 권부(權府)로부터의 지시선상에 있든 없든 간에 국가체제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직접지시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국가체제가 그 책임을 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부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비밀지시가 있었느냐는 증거의 존재 여부로 음모론을 저울질하고 권력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려는 것은 그것이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무모한 것이라 하겠다.

음모론에 대해서는 그렇다 하고, 필자는 진중권씨가 먼저 이문열씨의 글에 한 반론이 평소 진중권씨의 면모에 비춰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하는 감이 있어 몇마디 더해두려 한다.

"어쨌든 아무 '증거' 나 '근거' 도 없이 이문열은 과감하게 총선연대를 중국 문혁기의 '홍위병' 에 비유한다. 고약한 상상력이다. " 앞으로의 변화와 전개방향에 대한 우려는 얼마든지 열악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건물을 지을 때 잘못하면 무너진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건축자에 대한 모독이 아니다.

자식의 비행(非行)을 나무라는 부모가 자식을 도둑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제와 함께 민주주의 문화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는 것은 현대의 상식이며, 이 상식은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다. "

당연하다.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기 위해 선거출마자에 관한 각종의 정보공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정당의 공천권 등 한사람이나 단체가 자신의 특별한 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어떤 상당한 자기절제와 신뢰성의 확인과정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참여의식이 있어 도시 중앙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나라의 정책을 이끄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진중권씨의 앞날의 전개와 변화에 대해 우려되는 것은 그가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어떤 뒤틀린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 '에로영화 스타 젖소부인과 소설가 이문열의 관계는□' 이런 제목의 기사는 대중을 즐겁게 해준다. " 이로써 진중권씨는 이미 이문열씨에게 스스로도 인정하는 언어폭력의 주먹을 날렸다.

그는 또다시, "이문열씨는 지금은 존경받는 소설가이지만 앞으로는 모 정당 대변인이 되거나 당의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나도는 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라고 다시한번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분에 못 이겨 한번 '욱' 하며 주먹을 내미는 것은 아무리 순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도 감정이 격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번 주먹을 휘두르고 나서 다시 궁리해 결정타를 날리는 행위는 일반인은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폭력기술자' 만이 가능한 것이다.

같은 행위를 한번 한 것과 두번 계속 한 것은 그 행위의 우연성 여부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중권씨는 혹 언어에 의한 폭력을 전문으로 삼는 '언어폭력가' 로 나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앞날의 중요한 전개와 변화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박경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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