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민간은행 감사 자리 금감원 출신이 10곳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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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이 주요 금융회사 감사직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간은행의 감사는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본지가 105개 은행·보험·증권·신용카드사의 감사(상근 감사위원 포함)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60%인 63개사의 감사가 금감원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에선 국책은행(산업·수출입·기업)과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 3곳(우리·경남·광주)을 뺀 11개 민간은행 중 10곳이 금감원(옛 은행감독원 포함) 출신 감사로 채워졌다. 나머지 한 곳은 기획재정부 출신 감사를 두고 있다. 44개 증권사 중 금감원 근무 경력을 가진 사람은 전체의 68%인 30명에 달했다.

금감원 출신이 금융회사 감사로 대거 나갈 경우 이들과 직·간접적인 친분이 있는 금감원 직원들이 해당 금융회사에 대해 엄정한 검사와 감독을 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외형 확대 경쟁과 무리한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했지만 감독 책임을 진 금감원이나 은행의 내부 감사 모두 이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동국대 경영학부 강경훈 교수는 “규모가 큰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회사는 물론이며 시장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금감원 2급 이상 간부들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후 2년간, 퇴직 전 3년 동안 직무와 관련이 있었던 금융회사에는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 출신들은 퇴직 전 인력개발실이나 소비자보호센터, 지방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형태로 이런 제한을 피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퇴직 후 곧바로 금융회사 감사로 가는 인원도 2004년 12명에서 올해(9월 말까지) 23명으로 늘었다.

이런 문제점을 막기 위해 민주당 김재균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은 지난달 말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전 5년간 업무 관련성이 있었던 기업에는 취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 교수는 “적어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금감원 출신이 곧바로 감사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배·박현영 기자

◆금융감독원=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99년 1월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합쳐져 설립됐다. 국무총리실 직속기관인 금융위원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과 검사를 맡고 있다. 공적인 업무를 하지만 감독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행정부에 소속된 곳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집행 간부는 13명, 직원은 168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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