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불회사(佛會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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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노정(1950~ ) '불회사(佛會寺)' 전문

사람들이 모여야 이바구를 헐 틴디

오늘따라 한 사람도 안 뵈는구마잉

산문 밖 할배 장승이 벌써 다 시부렁거리부렸나

그래 선 자리서 댕기가셨구만이라

동백 꽃망울 더는 참지 못하고

시방 막 터질 참인디

댕그랑 풍경 소리 가슴을 적실 참인디

법문은 무슨 법문, 그게 다 잡소리제

오늘은 입 다물고 있는 기 상수랑께

요로코롬 돌팍에 주저앉아

뜬구름이나 쳐다볼 텐께



이 시의 평자 말대로 지금, 스님은 마렵다. 말씀이 마렵다. 어떤 말씀인가. 동백꽃 터질 참, 댕그렁 불경 소리 가슴을 적실 참. 그런데 스님 말씀을 들어줄 중생이 모이지 않았다. 산문 밖 돌장승이 서서 법문을 다해 버렸는가 보다. 이것이 바로 말 없는 법문의 세계 아닌가. 부처 당시 야단법석이 난 녹야원 설법도 말 없는 설법이었다. '떠돌이 백수건달로 다만 가물거리는 것들과 함께'(자화상) 살아왔다는 진주의 정신, 큰 대덕의 말씀이시다.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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