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빅딜' 사실상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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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년반 가까이 끌어온 석유화학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석유화학.삼성종합화학을 통합한 뒤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대산유화단지에 새로운 통합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측 파트너인 미쓰이(三井)가 투.융자 조건 및 해외 수출권과 관련,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옴에 따라 미쓰이측에 '무리한 요구는 안된다' 는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의 7대 구조조정사업 중 마지막으로 남은 유화빅딜은 불발(不發)직전에 놓였고 현대.삼성은 독자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하게 됐다.

통합추진본부 관계자는 "그동안 미쓰이가 고집해온 전대차관.수출독점권에 대한 최종입장을 이달말까지 통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며 "미쓰이측이 극적인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빅딜 성사는 어려울 전망" 이라고 말했다.

◇ 현대.삼성의 앞날은〓양사는 유화빅딜이 무산될 전망임에 따라 그동안 미뤄왔던 외자유치 및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작업에 다시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종합화학은 미국.유럽 등지의 외자 유치선과 접촉을 재개했다. 또 지난해 열병합발전소 등 2천4백억원대의 설비매각을 성사시킨 데 이어 올해도 2천억~3천억원 규모의 자산을 처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천억원대의 자산을 매각한 현대석유화학도 올해 3천억~4천억원 규모의 설비를 추가 매각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또 외자유치를 위해 미국의 CSFB 등 3~4개 투자전문회사와의 본격적인 접촉에도 나섰다.

한편 국내 기존업체와의 새로운 형태의 통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몇몇 기업은 현대석유화학이 공장을 쪼개 팔 경우 일부 공장을 인수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왜 무산됐나〓유화빅딜 무산은 미쓰이측의 '상식밖 요구'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미쓰이측은 ▶통합법인에 지분 투자하는 대신 해외 수출권을 전부 달라는 것▶일본 국제협력은행(JBIC)으로부터 1천5백억엔 규모의 융자를 끌어오는 대신 한국산업은행이 이를 전대차관 형식으로 수용할 것을 줄곧 고집해왔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수출권은 참여 지분만큼만 줄 수 있으며▶전대차관은 기존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난달 20일 우여곡절끝에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으나 이후 미쓰이측이 투.융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급보증을 추가로 요구하자 정부와 채권단이 빅딜 무산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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