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즈워스 방북 수락 … 내달 ‘핵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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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북·미 고위급 대화가 연내에 이뤄지게 됐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10일(현지시간) 북한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방북 초청을 수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과 6자회담 거부로 파국을 향해 치닫던 북핵 문제가 다시 한번 외교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보즈워스 대표의 대화 상대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나오는 것으로 북·미가 합의했다”고 전했다. 방북 시기에 대해 크롤리 차관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올해가 가기 전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는 12월 초순이 유력하다.

미국은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 초청을 받은 지 3개월여 만에 수락했다. 그만큼 내부 논쟁이 치열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핵 실험)에 대한 응징(유엔 대북 제재)이 우선돼야 하며,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워싱턴의 기류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의도적인 지연 전술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이는 대화 복귀-협상 결렬-도발 행위를 반복하는 북한식 협상 패턴에 휘말리지 않고 대화의 주도권을 북한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기존의 대북 제재는 풀지 않겠다는 것도 과거 부시 행정부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미국이 북·미 대화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떼긴 했지만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미 양측이 그리는 평행선은 조금도 좁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우선 대화의 성격 규정에서부터 입장이 다르다. 크롤리 차관보는 “북·미 대화는 6자회담의 맥락에서 열리는 것으로 양자 회담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이 6자회담의 장으로 되돌아오도록 설득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만남일 뿐, 북핵 폐기와 보상조치를 둘러싼 협상의 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핵 문제의 근원”인 만큼 “북·미 양자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정전협정 폐기와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을 연동시켜 당사자인 미국과만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북·미 대화의 횟수를 최대한 늘리면서 사실상의 협상장으로 활용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보즈워스 방북의 당면 목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다. 이에 대해 북한은 물밑 채널을 통한 사전 협의에서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평양에 오면 일이 잘 풀릴 것”이란 암시를 주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보즈워스 대표가 사전 약속이나 담보를 갖고 가는 것은 아니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고 간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북한은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과 한두 차례 제3국에서의 후속 회동을 거쳐 6자회담 복귀를 받아들이고, 북·미 양자 대화와 6자회담을 함께 진행시키려 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당국자는 “북핵 문제가 그동안의 제재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화를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의 길로 접어들면 북한은 이를 틈타 5자 공조에 균열을 내려 할 것”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5개국 간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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