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스파이스가 거칠어졌다…제3집 1년만에 2월 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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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2월초 나올 델리 스파이스의 새 음반은 '분열' 적이다. 1997년 데뷔해 지금까지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한 이 4인조 록밴드는 '90년대 한국 모던록의 중요한 성과' 로 평단의 인정을 받는 대표주자.

화려함과 우울함이 교차된 사운드에 70년대 포크음악을 연상시키는 여리고 순수한 가사로 고급스런 가요를 좋아하는 젊은 층에 사랑받았다.

'달려라 자전거' '종이 비행기' 등으로 인기를 얻었던 2집에 이어 1년만에 나오는 3집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멜로디는 한층 아름다워졌다. 템포도 한결 여유로와 발라드 같다. 그러나 그 뒤에 도사린 연주는 꽤나 거칠고 리듬감 강하다.

가사 역시 심각하고 내적인 몰입이 짙다. 타이틀곡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혹은 허구)' 은 아름다운 발라드 선율 위에 "뒤틀린 발목 너덜너덜 헤진 날개… 날 수 없는 작은 새를 누가 쳐다나 보겠어□" 같은 가사를 얹었다.

스매싱 펌킨스의 '1979' 를 연상시키는 '1231' 역시 가슴을 저미는 베이스의 반복 소절이 아름답지만 가사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래 날 증오해 날 죽이고 싶어/그렇게 인생은 아름답지 않은 걸 알아…" 음반 제목조차 '슬프지만 진실…' 이란 심각한 어조다.

메탈리카의 노래 '새드 벗 트루' 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 제목은 우리 가요계의 실상을 풍자한 것이다. "진지한 음악이 외면당하는 슬픈 현실을 비꼰 것" 이라고 멤버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현실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딱히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전체적인 비극이며 그래서 자학적이고 방황하는 내용의 가사로 귀결됐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노래는 자폐적인 메아리에 불과한가. "그렇지않다. 겉치장을 뜯어낸 솔직하고 직선적인 연주로 청중의 공감을 얻어낼 것" 이라고 멤버들은 반박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 음반은 귀에 곧바로 꽂히는 사운드 덕분에 가사가 주는 이질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멜로디가 좋아 여러 번 듣다보면 가사의 속뜻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연주밀도에서 상당한 공을 들여 여성적인 섬세함이 풍겼던 2집과 달리 이번 음반은 남성적인 맛이 강하다. 밴드의 전매특허였던 그룹 U2풍의 딜레이(지연)주법이 사라지고 톤과 리듬감을 강조한 모던록형 연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공연을 감상하고 나면 맛이 한층 생생할 음반이다.

"사실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음반이에요. 암울한 가사에 선율도 여리게 들리지만 공연에 와서 들어보면 모두 자리를 박차고 몸을 맞댄채 춤추게 될 겁니다. "

비쩍 마른 몸매지만 공연에서는 이상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리더 김민규(기타겸 보컬)의 말이다.

**1집 '델리 스파이스'

97년 발매, 한국적 어법의 모던록을 보여준 수작으로 당시 언더 출신 무명밴드 델리 스파이스를 한국록의 기대주로 띄웠다. 개성적인 기타톤과 풍부한 선율 제조력으로 호평받았으며 '가면' '차우차우' 등 90년대 젊은이의 정서를 가감 없이 담은 노래들로 인기를 얻었다.특히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기타연주가 일품인 '차우차우' 는 이 밴드를 상징하는 곡.

**2집'웰컴 투 델리 하우스'

99년 발매.깔끔한 자켓만큼이나 잘 다듬어진 내용으로 밴드의 성장을 보여준작품.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했고, 촘촘한 편곡으로 팝적인 음반을 만들었다.'달려라 자전거'. '종이 비행기'등 포크적 성향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들이 수록됐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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