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부" 범민련 간부 사례로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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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치론 쪽의 주장

공안 검사를 비롯한 보안법 존치론자나 개정론자들은 "이종린씨의 행위는 명백한 보안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또 보안법을 폐지해 버리면 이씨의 보안법 위반행위를 형법이나 대체입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며, 결국 우리 체제의 안위가 송두리째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씨가 북한 인사들에게서 금품을 받았다는 부분과 관련,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이 남측의 민간단체에 수천만원의 지원금을 준 배경에는 불순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공작금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안법을 폐지하면 각종 민간 지원비 성격으로 둔갑한 간첩들의 공작금 지원행위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씨에게 적용된 찬양.고무죄도 분명히 우리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보안법 존치론자들의 설명이다. 이씨처럼 우리나라를 적화해 통일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조국 통일 헌장을 채택하자는 주장을 처벌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형법상 내란죄는 폭력행위가 있어야 적용할 수 있는데 이씨의 경우 폭력행위가 드러나지 않았다. 또 폐지론자들이 처벌 수위가 낮은 남북교류협력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회합 통신의 경우도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은 기본적으로 순수한 민간 교류에 국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 법대 제성호 교수는 "교류협력법은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법이고, 보안법은 우리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교류를 막자는 것인데 어떻게 한 법에 다른 입법 목적이 공유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친북 단체인 범민련 간부끼리 만나 통일방안 등을 논의하는 것은 우리 체제에 위협이 되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는 보안법상의 회합 통신죄로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하자는 주장 역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편의 제공 역시 이는 순수한 민간 교류와 구분되는 이적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처럼 김일성 사상과 적화 통일 등의 내용을 담은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비 건립에 쓰라고 북측에 돌을 준 행위를 어떻게 순수한 민간 단체의 지원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병주 기자

*** 폐지론 쪽의 주장

이종린씨의 경우 불법 사실이 있었더라도 보안법 대신 다른 법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씨에게 적용된 금품수수 죄는 처벌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남한 정부가 북한 단체를 지원해온 것처럼 북한이 우리(남한)의 민간 단체에 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전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김인회 변호사는 "보안법 조항대로라면 이산가족이나 사업자들 간의 선물 교환 등도 처벌해야 한다"며 "우호적인 금품 교환까지 모두 처벌할 수 있는 보안법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민변은 보안법 폐지를 공식 입장으로 밝히고 있는 단체다. 이씨의 행위가 실질적으로 국가의 안위에 어떤 위험을 초래했는지 살펴본 뒤 처벌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이씨가 우리 정부 몰래 불순한 목적을 갖고 '공작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본인의 신념에 따른 정치적 의견이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찬양.고무죄로 처벌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조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상황)을 알면서도…' 라는 부분이 자의적인 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씨가 우리 체제를 부정하는 선동적 발언을 일삼고 다녀 국가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을 줬다면 형법상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변호사는 또 회합.통신 부분도 남북교류협력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한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 등과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는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씨가 2002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들과 만나기 전에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사실만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다.

민변 장경욱 사무차장은 "이씨가 북한 측 인사를 만난 목적이 우리 정부를 붕괴시킬 의도였다면 형법상 간첩죄 등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안법 폐지론자들은 이씨가 2000년 4월 북한 평양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 부착할 옥돌을 제공했다는 공소사실(편의 제공)도 보안법의 남용 사례로 꼽고 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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