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악 선거법 개정은 좋지만…시민들 "헷갈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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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7일 선거법 87조(노조를 제외한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를 폐지하라고 지시한데 대해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며 "본격적으로 낙선운동을 전개하겠다" 고 천명했다.

시민들은 대체로 법 개정의 취지에 동감을 나타내면서도 "갑작스런 법 개정으로 선거관리에 누수가 올것" "선관위가 경실련의 활동을 위법이라고 해석하기 직전 대통령이 특정 조항의 폐지를 지시해 헷갈린다" 는 등의 우려를 나타냈다.

또 시민단체의 낙선.낙천 운동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내려 집행해야 하는 검찰과 경찰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 환영〓총선연대 장원(張元)대변인은 "뒤늦게나마 여론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며 "선거법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라 여야가 국회에서 처리할 사항인 만큼 처리과정을 지켜보겠다" 고 밝혔다.

총선연대 관계자는 "오늘을 기점으로 낙선운동이 본격화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 이라며 "오는 20일 공천반대 명단을 공개하고 전국 캠페인을 전개한 뒤 3월초 낙선운동의 대상자 명단을 최종 발표하겠다" 는 일정을 밝혔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시민입법국장도 "선거법 87조 폐지는 유권자 알권리 충족과 정보공개 차원에서 당연한 귀결" 이라며 "법 폐지 때까지 모든 시민단체와 연대해 서명운동.입법청원.헌법소원.시민집회 등 다각적 방법을 펼쳐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선거법 87조는 폐지돼야 하며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다" 고 선언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4개 교수 단체도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법 87조 폐지와 시민단체들의 활동방향을 지지한다고 선언, 낙선운동에 힘을 보탰다.

◇ 우려.곤혹〓선거법 87조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S대 정치학 박사 과정의 朱모(32)씨는 "비록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현행법을 초월하면서까지 '정당성' 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며 "특히 대통령의 한마디로 사태가 급변한 것 자체가 후진정치의 한 사례를 보여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법기관은 법 개정 이전에 봇물처럼 터져나올 시민단체들의 낙선.낙천 운동의 처리 방향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법이 공식 폐지될 때까지 적극적인 법 적용은 유보해야 할 딜레마에 빠져 있다" 며 "당장 시민단체가 이에 대한 명확한 유권해석을 요구하고 있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 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박신홍.하재식.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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