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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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가 커렛 지음, 이만식 옮김, BooBooks, 215쪽. 1만500원)


짧고 굵다. 22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마지막에 수록된 ‘크넬러의 행복한 캠프 생활자들’만 빼고 1편 당 4장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각 이야기속에는 ‘세상 만사’의 감정이 다 들어있다. 환상, 슬픔, 가여움, 분노, 위선, 행복, 감사 등이 녹아있다.

출발하려는 버스를 잡아타려고 뛰어 본 적이 있는가. 나를 봤는지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체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휙’ 가버리는 버스 운전사의 뒤통수를 보고 투덜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집에서 5분만, 아니 1분만 더 일찍 나왔으면 헛 고생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은 못하고 말이다.

표제인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다. 그는 절대로 늦게 오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닫힌 버스 문을 두드리며 갈망의 눈빛을 보내는 학생에게도, 짐을 가득 들고 떨리는 손을 흔드는 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정말 못된 운전사구나’ 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운전사의 신념은 이렇다. 그는 늦게 오는 A씨를 외면하고 달린다. 문을 열어주면 30초가 지연된다.

A씨는 15분 뒤 도착하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인생에서 15분을 상실한다. 문을 열어주면 승객 개개인 모두가 30초를 상실한다. 버스에 60명이 타고 있다면 모두 합쳐 30분을 잃게 된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말이다. 15분과 30분, 두 배 차이다. 어느날, 게으르고 나약한 에디가 헐떡이며 버스를 잡으려고 뛰어온다. 운전사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문을 열어준다. 왜였을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라. 힌트를 주자면 그는 신이 되고 싶었다.

또 다른 단편 ‘마지막으로 한 편만, 그걸로 끝이죠’는 작가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글 쓰는 재능을 가져가려고 온 악마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제발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매달리까. “왜 내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하느냐”며 악을 질러댈까. 주인공은 프랑스 송로버섯과 한 잔의 레모네이드를 악마에게 권하며 소설 한 편만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네 쪽이 넘지 않게 아주 짧은 것으로 쓰겠다고. 글을 다 쓴 뒤 그는 악마에게 높은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재능 뿐 아니라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가져간 재능이) 너무 많아서 하나라도 남게되면 언제나 감사히 돌려받겠습니다.” 악마는 자신의 일에 더럽고 치사함을 느낀다. 작가 에트가 커렛은 언제 어느 순간에 자신의 재능이 사라질 지 모르니 항상 감사하며 글을 써내려간다는 마음을 이 글에 녹인듯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민 작가’로 특히 청년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다수 써냈다. 그뿐 아니라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까지 감독했다. 아내인 쉬라 게픈과 공동 감독한 ‘젤리 피쉬’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받았다. 영화 ‘피부는 깊어’는 이스라엘 오스카상을 받기도 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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