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사철씨 '낙선운동' 직격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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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실련의 '공천 부적격자' 명단 공개에 이어 전국의 4백여개 시민단체들이 12일 '2000년 총선 시민연대' (총선연대)를 발족하고 낙천.낙선운동을 천명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낙선운동이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총선연대는 불법을 무릅쓰고라도 문제있는 후보들을 떨어뜨리는 낙선운동을 감행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법테두리를 넘어선 월권행위' 라며 집단적인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는 등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면을 보이고 있다.

총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으로서 총선연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사무처장과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정치권을 대변해온 한나라당 이사철(李思哲)대변인이 13일 오전 본사 편집국에서 만나 격론을 벌였다. 대담은 시종일관 팽팽했다.

▶박원순:왜 전국의 4백여개 시민단체들이 '총선연대' 를 발족시키고 낙천.낙선운동을 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순전히 정치권이 자초한 일입니다. IMF경제위기로 국민들이 고통을 겪을 때 우리 국회는 뭘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웬만한 기업이 하나 무너지면 수십명의 국회의원이 연루되고, 심지어 국회가 교도소 담벼락 밑에 있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도는 게 국회의 현주소입니다.

21세기 문턱에서 치러내는 이 중요한 선거에서 또 다시 부패한 정치, 함량 미달의 정치가 계속돼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 위에서 낙선운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사철:시민단체가 총선 출마자와 후보공천 출마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자료를 제공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는 것은 좋아요.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자의적인 잣대를 갖고 낙선운동까지 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권한과 기능을 벗어난 것 아닙니까. 지난번 경실련이 발표한 명단에도 일부 의원의 경우 시민단체가 의정을 잘한 의원으로 평가해 놓고 발언 한마디 잘못했다고 부적격 의원으로 선정했습니다. 더구나 발언의 배경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말 몇마디만 문제삼는 것은 선정기준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결여한 것 아닙니까.

▶박:경실련의 명단에 대해서는 저희 단체가 한 일이 아니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총선연대는 그 점에 있어 신중함을 더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또한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겠지요.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의정 평가와 의정 감시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를 선거국면에서 유권자에게 알리고 정말 문제있는 의원들이 다시 당선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단순히 부정선거 감시만 한다면 이는 상류의 오염원은 막지 못한 채 하류에서 정수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은 개인이 일방적으로 과장된 자기 선전을 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헐뜯기가 판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에 빠져 잘못된 투표행위를 해왔다고 봅니다.

▶이:낙선운동이 '여당 편들기가 아니냐' 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번에 발표된 명단을 보면 정작 문제있는 최고위층 인사들은 쏙 빼고 힘없는 평의원들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여당은 힘도 있고 돈도 많아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 쉽지만 야당은 현역의원을 완전히 갈아치우고 신진인사를 영입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런 판에 낙선운동을 벌이는 것은 동기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현정권의 원거리 음모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기 십상입니다.

▶박:이의원께서 재산정리를 잘 하셔야겠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은 완전히 명예훼손에 해당됩니다(웃음). 시민단체가 집권당 편을 든다는 것은 낙선운동을 왜곡시키는 주장입니다.

▶이:실제로 시민단체들이 이전 정권때보다 훨씬 많은 보조금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박:제가 일하는 참여연대는 단 한푼의 정부 보조금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목소리 톤이 높아지며)지금 시민단체들이 현 정권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비판의 강도가 약하고 미진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정권에 대해 비판해야 할 때는 침묵하고 정치인을 매도할 땐, 오히려 앞장서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박:참여연대의 개혁통신을 한번 본적이 있습니까. 조목 조목 현정부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동강댐 건설과 새만금, 그린벨트 정책 등에 대해 많은 단체들이 단식농성까지 벌였습니다.

시민단체에 대한 무관심을 오히려 지적하고 싶군요. 야당은 피해의식을 가질 게 아니라 오히려 이번 기회를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두 토론자는 긴장을 풀기라도 하듯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이:아무튼 공천 부적격 후보를 선정하는 기준이 모호해요.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경우 법 개정을 놓고 찬반 논란이 많아요. 그런데 이를 근거로 개혁세력이냐, 수구세력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느 주장이 진정 이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가고 도움이 되는 것인지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외국의 경우 시민단체들이 자기 기준에서 중요한 법안을 내세우고 여기에 반대 또는 찬성하는 의원의 명단을 제공합니다.

물론 단체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지만 시민단체의 공신력을 갖고 주민들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경실련이 그런 기준을 적용했다면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단체는 그런 단체구나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이:시민단체들이 유권자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해도 낙선운동까지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박:의견 제시와 낙선운동 사이에 무슨 차별성이 있습니까. 의견 제시 그 자체가 낙선운동이죠.

▶이:총선연대도 20일 50여명의 공천 부적격자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느 의원에 대해 이 사람의 잘한 점은 뭐고 못한 점이 뭐다, 공과를 살펴보니 잘못된 점이 많아 우리는 이를 부적격자로 본다고 하면 우리도 공감하겠어요. 그러나 현재는 잘못된 점만 부각시키고 있잖습니까. 어느 의원을 시민단체에서 우수의원으로 뽑아놓고 예결위에서 욕설 한번 했다고 부적격 의원으로 뽑았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낙선운동의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요. 시민단체 회원들이 낙선 대상 후보의 사무실에 몰려가 물러가라고 농성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하지 않겠습니까. 부작용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각 후보들도 자기 지역에 사회단체를 조직해 상대방 후보를 부적격자라고 비난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지역에서 난리가 날 거라고 봅니다.

▶박:왜 지지 운동을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사실 지지운동이 더 힘들어요. 우리도 지지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만 총선연대가 펼치는 낙선운동은 우리 정치판이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최소한의 국민적 의지라고 이해해주세요.

▶이:정치권에서도 이제 나를 뽑아달라고 하지,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은 자제하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시민단체들이 농성하고 플래카드 휘두르고 외치고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지요. 미국도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아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심지어 라디오.TV 방송을 통해 이런 후보 낙선시키자고 운동도 합니다.

▶이:시민단체의 생명은 도덕성과 준법성이라고 봅니다. 보도를 보니 "법정에 서는 것도 각오한다" 고 했는데 법을 지키지 않는 행동은 용인되지 않을 것입니다.

▶박:(웃으며)그 말씀 잘 해주셨습니다. 악법도 법이니까 지키라는 말은 지난 30년 군사독재에서 수많이 들어왔던 말입니다. 하지만 악법은 고쳐야 합니다.

과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흑인은 백인과 함께 화장실이나 음식점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악법도 법이니까 지켰다면 아마 지금도 그 법은 존재할 것입니다.얻어맞고 감옥도 가는 희생을 치렀기에 악법이 개정된 것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같은 행동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선거법 제87조를 놓고 법은 법이니까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지요. 진정한 국회의원이라면 나서서 고쳐야 할 것입니다. 개정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위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을 말할 뿐입니다.

▶이:그러면 먼저 문제가 되는 선거법 87조의 개정노력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시민단체에 대해 참 관심이 없으시군요. 지난 87년부터 선거법 개정을 위해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엄청난 노력을 해왔습니다. 공청회.청문회.청원 등을 수없이 해왔습니다.

▶이:시민단체가 법 개정 노력을 내부에서만 한 것 아닙니까. 법 개정의 기준은 결국 국민의 공감대라고 봅니다. 국민 대부분이 개정 움직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80%라는 대다수가 선거법 87조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3당에서도 정치개혁 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는데 왜 개정을 안해 줍니까. 국회가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니 우리는 감옥을 가서라도 이를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국회야말로 반민주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80%가 찬성했다는 점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응답자 대부분이 개정 이후의 폐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답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낙선운동에 들어가면 폭력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목청을 높이며)시민단체 회원들이 플래카드 들고 사퇴하라고 하면 그 후보의 지지자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박:저는 유권자들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법 87조는 반 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국민 절대 다수가 폐지를 주장하는 법안입니다.국회가 선거법을 개정해주면 불법행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안되면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법정에 서겠다는 것입니다(한동안 이 의원은 낙선운동의 문제점 지적을 반복해 강조했고 朴위원장은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에 목청을 높였다).

▶박: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그러면 노동조합의 선거운동은 선거법으로 왜 허용합니까.

▶이:노조는 사업장을 단위로 만들어지므로 구성의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결성을 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박:유권자 무시하지 마세요. 아무 단체나 그런 일을 한다고 유권자가 귀를 기울입니까.

▶이: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올바른 정보를 유권자에 제공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선거법 개정의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힘이 발휘되고 낡은 정치권이 변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도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받아들여 스스로 자정노력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리〓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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