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피노체트 석방 결정에 환호·분노 교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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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런던.산티아고〓외신종합, 이상언 기자]영국 정부가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를 풀어주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찬반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피노체트의 건강진단 결과 그가 재판을 받기 어려울 만큼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가택 연금을 해제키로 했다고 11일(현지시간)밝혔다.

영국 주요 언론들은 피노체트가 머지않아 칠레로 되돌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내무부는 "4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이 지난 5일 7시간 동안 피노체트의 건강을 진단한 결과 그가 재판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이런 입장이 바뀌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 밝혔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영국 내무부는 피노체트를 스페인에 인도하지 않을 방침이다.

석방결정이 알려지자 칠레의 인권단체와 야당인사들은 즉각 비난 성명을 내고 피노체트의 구속 재판을 거듭 촉구했다.

해외망명 칠레인 단체인 '민주 칠레' 의 카를로스 레예스 대변인은 "피노체트가 사법정의로부터 빠져나갈 것이라는 데 전율을 느낀다" 고 말하고 "칠레에는 현재 그보다 나이가 많고 건강이 더욱 나쁜 고문 희생자들이 많다" 고 지적했다.

영국의 '고문희생자 진료를 위한 의료재단' 은 정부의 석방결정에 반발하며 "피노체트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의학적 증거들을 법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칠레 정부는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한 뒤 "영국 정부의 인도적 조치를 환영한다" 는 성명을 발표했다.

피노체트 본인은 즉각 환영의사를 표시했다.

피노체트의 오랜 친구인 대처 전 영국 총리도 "내무부의 결정을 존중한다" 고 말했다.

피노체트 인도를 영국측에 요구해왔던 스페인 정부도 "영국 정부가 내린 석방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고 밝혔다.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은 "피노체트 신병처리의 최종 결정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칠레측 의견과 스페인.프랑스 등 그의 인도를 요구하고 있는 국가들, 그리고 국제사면위원회(AI) 등 여러 인권단체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릴 것" 이라고 말했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90년까지 17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했던 피노체트는 98년 10월 치료차 방문했던 영국에서 체포됐다.

당시 그는 스페인.프랑스.스위스 등의 사법기관으로부터 살인.납치.고문 등의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칠레의 인권단체들은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망.실종자가 3천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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