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명작] 1. 에릭 오르의 물 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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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는 미술품. 때론 작품인지도 모르는 채, 때론 작가와 작품명을 궁금해하며 지나친 기억을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숨어있는 명작 찾기를 통해 생활 속 미술을 즐겨보는 자리를 격주로 마련한다.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지하에는 이상한 물체(?)가 하나 놓여 있다. 삼각기둥 모양의 몸체에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해 분수대인 듯도 싶고 아닌듯 싶기도 하다.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돌아가는 취객으로선 착시 현상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만 흐르는 것은 진짜 물이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 에릭 오르(1939~98)의 물 조각'(water sculpture)'이다. 국내에는 1989년에 처음 소개됐'고 인기가 좋아 94년에도 전시회가 열렸'다.

몸체가 띠는 광채와 물의 흐름이 합쳐지면서 빚어지는 시각적 효과가 특이한데, 이렇듯 동력이나 빛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것을 일러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고 한다. 첨단 기술이 개입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작품 맨 밑부분에는 모터가 장치돼있고 물을 채울 수 있는 상자가 있다. 모터의 힘이 물을 위로 뿜어 올리면 끝까지 올라간 물은 자연의 원리대로 다시 떨어져내린다.

호텔측은 "물을 내뿜기를 반복하는 구조 덕분에 '가습기 아니냐' 는 우스갯소리도 가끔 듣는다" 고 말한다. 오르의 물 조각은 신라호텔 지하와 중앙일보로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오르는 미니멀리즘 계열의 추상 조각으로 70년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품들은 뉴욕 현대미술관이나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영구 소장돼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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