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서 각각 벌어지는 눈길 끄는 바둑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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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새해들어 韓.中.日 3국에서 화제의 대결이 잇달아 펼쳐진다. 한국에서는 조훈현9단대 여성강자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의 바둑사상 최초의 결승전 성대결, 일본에서는 조치훈9단대 왕리청(王立誠)9단의 일본랭킹 1위 기성전도전기…. 저마다 뜨거운 의미가 담겨있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이 승부에 팬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조훈현9단-루이나이웨이9단의 성대결

국수전 도전3번기에서 격돌했다. 결승전 사상 처음 벌어지는 남녀기사의 성대결에 강호 바둑팬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17일 한국기원에서 첫판이 벌어지며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조훈현9단은 표범처럼 사나운 기풍에 누구나 인정하는 전투의 달인. 백병전이 특기인 루이나이웨이9단은 수비의 천재 이창호9단의 대마를 궤멸시킨 괴력의 소유자. 그래서 이번 대결은 필연적으로 일장의 난투극이 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더욱 흥미가 고조되고 있다.

여성과의 정면승부가 어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9단은 "(여성과는)지금까지 두번 둔 일이 있지만 루이9단과는 처음이다.

대국이 시작되면 상대가 여성이란 사실은 곧 잊어버리고 판에 몰입하지 않겠느냐" 고 반문한다.'싸움꾼' 芮9단은 "존경해온 조9단과 대국하게 된 그 자체가 영광" 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전문가들은 "루이9단의 파괴력이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송곳처럼 치고 빠지는 조9단의 스피드가 루이9단에겐 상극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진단하며 조심스럽게 조9단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조치훈9단-왕리청9단의 기성전

일본바둑은 매년 랭킹1위 기성전으로 한해를 시작한다. 우승상금 3천3백만엔에다 거액의 대국료와 특혜가 뒤따르게 되는 최고기전이라 과거 이대회를 6연패했던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9단은 "일년에 네판만 이기면 된다. " 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특히 이번 대결은 지친 기색을 드러낸 44세의 일인자 조치훈과 그의 숙적 왕리청의 대결이란 점에서 관심을 더욱 끌고있다. 지금까지 두사람의 전적은 26승1무26패로 팽팽하다.

98년 혼인보전에선 조9단이 4승2패로 이겼지만 지난 연말의 왕좌전 도전기에선 조치훈이 1대3으로 패배했다. 지난해 혼인보를 상실한 조9단이 이번 대결에서 패퇴하면 사실상 그의 시대는 끝나게 된다. 7번기의 첫판은 12, 13일 양일간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린다.

제한시간 8시간의 이틀바둑에서만은 탁월한 업적을 쌓아온 조9단이 이번에도 그 명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한편 12일 베이징에선 중국의 아함동산배 우승자 마샤오춘(馬曉春)9단과 일본의 아곤 컵 우승자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이 통합타이틀전을 갖는다.

젊은 여성과 재혼한 뒤 급속히 회복하여 5관왕이 된 小林과 상승세의 馬9단의 대결도 올해의 판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한판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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