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독서 고수]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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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올해 스물여덟. 돌이켜보니 고3 때가 가장 힘든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 학교 공부는 괴로움 자체였다. 그만두고 싶어도 별다른 대안도, 용기도 없었다. 시험 기간 중에도 소설책을 집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쉬는 시간에도, 버스 안에서도, 나른한 점심시간에도 읽었다. 기독교 신자의 성경책처럼 가슴에 안고 다녔다. 소설은 10대 후반의 나에게 삶에 대한 대답을 찔러주곤 했다.

『개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당신이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종이와 당신 손의 마찰로, 원자와 원자의 마찰로 빅뱅이 일어나 하나의 우주가 탄생할 수도 있다.”

학교에 바짝 조여져 있던 나는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주를 탄생시켰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채팅으로 알게 된 여학생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내가 소설 속에 나오는 추리문제를 내면, 그 친구는 문제의 정답, 혹은 오답을 보내왔다. 『개미』로 인생을 배우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고교 졸업 이후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 다시 연락할 수 있다면 미안한 마음에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윤윤섭(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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