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광화문광장은 장터 바닥이 되어 가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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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울 광화문광장이 새롭게 조성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가슴에 여유와 안식을 주던 거대한 은행나무들이 자취를 감추자 시민들은 의아해하며 아쉬운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더 넓고 더 반듯하며 시민에게 한층 더 가까운 광장으로 조성된다는 정부의 기약에 많은 시민은 아쉬움을 달래며 새로 태어날 광장을 기다렸다.

지난 8월 1일, 기나긴 조성 공사 끝에 새 광화문광장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광장을 찾은 엄청난 수의 시민을 보며 새로운 광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광장에 등장한 것이 이른바 ‘플라워 카펫’과 걸상을 겸한 우산 모양의 햇빛 가리개였다. 플라워 카펫을 잘 볼 수 있도록 한 사열대 비슷한 시설물을 비롯해 여느 가정집 정원에나 있을 법한 흔들 소파 등 이런저런 편의 시설이 무질서하게 자리 잡으면서 광장은 ‘동네 쉼터’와 같은 모습으로 돌변했다.

한글날 즈음해서는 광장 중앙부에 세종대왕의 좌상이 세워졌다. 바로 좌상 앞에 좌상과는 색깔이나 형태 등 전혀 격에 맞지 않은 임시 전시장이 들어서더니 온갖 크고 작은 전시물이 조잡스레 그 공간을 채웠다. 누군가 사치의 반대는 천박함이라고 말했던가. 바로 오늘 개장 100일을 맞은 광화문광장을 이르는 말인 듯싶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외국의 큰 광장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장의 공통점은 아마도 공간이 주는 시원스러움과 그 공간에서 만끽하는 시민 생활의 여유로움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명품 광장에는 광화문광장에서나 볼 수 있는 햇빛 가리개나 플라워 카펫 같은 것은 없다.

더욱이 알 수 없는 사실은 이번 광화문광장을 새롭게 조성한 설계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냥 보고만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오래전 광화문광장의 설계 조감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엔 꽃 카펫도 햇빛 가리개도 없었으며 폭이 약 30여m, 길이가 750m의 공간이 주는 시원스럽고 여유로운 멋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만일 설계자가 꽃 카펫이나 가리개 같은 시설물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다면 시민을 우롱한 것과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건축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품격을 손상시킨 행위를 방관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적 소유권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손수 만든 생활용품인 보자기에서 배어 나오는 심플함의 아름다움을 떠올려 본다. 그 절제된 구성과 차분한 색깔의 배합 예술은 현대 추상미술의 극치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순박함과 고요한 단순함의 결정체인 우리네 보자기가 전하는, 혼이 담긴 예술성을 우리 모두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광화문광장 관리자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우리 광화문광장도 혼잡스러운 우울함에서 전통 보자기가 지닌 ‘단순함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한다.

이성낙 가천의과학대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