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16>야구장에 가서 시위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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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주 전 토요일이었다. 경기도에 있는 공연장을 찾아 뮤지컬을 한 편 보았다. 작품은 그냥저냥 볼 만했다. 돌아오는 길은 주말이라 그런지 꽉 막혔고, 저 멀리 잠실 메인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탑의 불은 환했다. ‘무슨 일 있나’ 싶었는데 불현듯 무언가 머리를 스쳤다. ‘맞아. 오늘 한국시리즈 7차전하지.’ 공교롭게도 그때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왔다. “오늘 한국 프로야구 28년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졌습니다. 기아가 9회 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젠장!”

집에 돌아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녹화 경기를 봤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SK의 불펜진엔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끝내기 홈런을 친 선수가 눈물로 뒤범벅이 됐고, 마흔에 접어든 노장 선수는 꺽꺽 울었으며, 패전의 멍에를 진 투수는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런 극적인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았다면 얼마나 짜릿했을까. 난 두고두고 아쉬웠다.

최근 공연 제작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공연이 안 돼 죽겠다”며 울상이다. 신종 플루, 경기 침체 등 분석도 분분하다. 과연 그것 때문일까. 혹시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프로야구가 연관되진 않았을까. ‘에이, 야구와 공연은 전혀 다른데…’라며 반박할지 모르지만 그건 공급자 위주의 사고다. 소비자 입장에선 공연이냐 야구냐라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계급장 떼고 맞짱 뜨면 공연이 프로야구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콘텐트만 놓고 비교우위를 따지는 건, 그래도 낫다. 더 큰 문제는 돈이다.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 하나 보는 데엔 1만원이 안 든다(일반석 평일 6000원, 주말 7000원. 지정석 1만원).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일반석 3000원)과 비교해도 거의 안 올랐고, 일반석 6000원은 거의 10년째 유지되는 금액이다. 외국과 비교해도 엄청 헐값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엔 수십 가지의 티켓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야구 경기 하나를 보려면 50달러(약 5만8000원)쯤 든다. 월드시리즈 최고가 티켓은 무려 3만5000달러(약 4000만원)나 됐다. 일본에서도 보통 4000∼5000엔(5만∼6만5000원)이 든다.

“싸게 야구 볼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냐” 하겠지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은 몽땅 적자다. 한 해 평균 150억원 정도 손해 본다. 광적인 부산팬을 갖고 있는 롯데도 100억원쯤 적자를 본다고 한다. 과연 이렇게 돈을 쏟아 부으면서 헐값에 티켓을 파는 게 정상적이고 ‘프로’일까.

알다시피 요즘 웬만한 대형 공연장의 작품 하나 보려면 10만원이 넘는다. 콘텐트도 썩 낫다고 할 수 없는데, 가격마저 프로야구보다 10배 이상 비싸니 누가 공연장을 오겠는가. 그러니, 공연 관계자들은 흥행이 안 된다고 자기네들끼리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울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연대해야 한다. 야구장엘 가서 머리에 끈을 묶고 소리를 쳐야 한다. “경기도 재밌는데, 6000원이 웬말이냐.” “싸게 파는 프로야구에, 한국 공연 다 죽는다.”

농담 아니냐고? 아니다. 식당에 가선 꼬박꼬박 돈을 내지만, 영화는 툭하면 다운로드 받고, 공연은 어떡하든 초대권으로 가려는 한국 사회에서 6000원에 거래되는 프로야구는 가장 적나라한 대한민국 콘텐트의 현주소다. 프로야구를 6000원 내고 볼 수 있어선 한국 공연도, 한국 콘텐트 산업도 미래가 없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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