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원화기준 무역통계 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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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역업무를 보는 사람 가운데 우리나라 연간 수출을 원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역통계를 항상 달러화로만 접해 왔기 때문이다. 무역통계를 어떤 통화를 기준으로 작성.발표해야 하는가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경제의 발전수준이나 이용자의 편의 측면에서 원화기준으로 발표할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우선 환율의 변동이 심한 경우 수출경기에 대한 판단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의 정책 선택에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달러화 기준으로 98년에 2.8% 감소했던 수출이 지난해에는 8.5% 증가해 수출이 크게 회복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원화표시로 보면 98년에는 오히려 4.3%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거꾸로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업계 입장에서 보면 원화표시 통계가 수출경기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내년에도 마찬가지다. 달러 기준으로는 수출이 10%를 웃도는 증가세가 예상되지만 수출업계는 수출보다 내수 경기에 더 기대를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현 추세로 볼 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상당폭 더 절상(환율은 낮아짐)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수출경기를 판단하는 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통계상의 착오다.

둘째, 통계를 이용하는 측면에서도 굳이 달러화 표시 통계를 이용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과거 고정환율 시절에는 달러표시 통계가 곧 원화표시나 마찬가지였다. 또 당시에는 외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속한 통계정보도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정도의 절박한 사정은 아니다. 외환수급에 관한 모니터링은 달러화 기준으로 발표되고 있는 국제수지 통계로 충분하다. 무역업계의 입장에서는 원화표시 수출입 통계의 필요성이 커졌다.

수출업계는 기업경영상 대부분의 자료를 원화기준으로 작성하는데, 유독 수출 매출만 달러기준으로 작성해 경영상황을 판단하는 데 애로를 겪을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규모가 일정수준을 넘어선 나라 중 미국 달러화를 기준으로 무역통계를 내는 경우는 미국과 한국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가들은 물론 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도 자국 통화기준의 무역통계를 작성하고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유인열(柳仁烈) <한국무역협회 조사담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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