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도 슬슬 '사이버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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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화가들이 전시회 한번 여는 데 드는 비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5백만원. 1주일 정도 전시장을 빌리고 팜플렛을 만들고 평론가에게 원고료를 지급하는 돈이다.

이 최소 비용의 5분의 1인 단돈 1백만원으로 2개월 간이나 전시를 하게 된 화가가 있다.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주인공은 오는 14일 첫 개인전을 갖는 고영훈(30)씨.

해결책은 바로 인터넷. 래스트원(대표 임채욱)이 개장하는 갤러리 애피스(http://www.affice.com)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의 지출은 조각.설치 작품을 3차원 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 위한 촬영비와 원고료가 전부다.

미술계에도 '인터넷 바람' 이 불고 있다.

인터넷을 작품 발표나 거래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행업체들은 대부분 벤처 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어 벤처 열기는 미술계에서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갤러리 애피스의 경우 독일.프랑스 등 유럽 7개국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와 제휴한다.

해당 작가들로선 해외로 소개되는 기회까지 생기는 셈이다.

오는 20일부터 문을 여는 ㈜헬로아트(http://www.helloart.com)는 일반 애호가들을 위한 그림 판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관심은 있어도 왠지 화랑의 문턱을 넘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이트의 특징은 가격별.주제별 주문이 가능하다는 점. 가령 '20만원대로 꽃이 그러져 있는 유화' 를 원한다면 분류에서 서양화를 클릭하고 가격대는 20만원을 고른 뒤 검색어에 '꽃' 을 넣으면 원하는 작품 목록이 나타나는 식이다.

헬로아트 이상엽 대표는 "선물용.인테리어용 등 맞춤 주문을 하려는 이들의 수요가 높을 것으로 본다" 고 전망한다.

이 곳에는 서양화.공예.사진 등 세 분야를 합쳐 모두 2천점의 작품이 마련돼 있다.

대중화를 위해서는 값이 너무 비싸면 곤란하다는 점을 감안, 작품의 80% 이상이 30대 작가들의 것으로 채워졌다.

다음달 11일 개장하는 인터넷 미술방송국 아트빌(http://www.artvill.com) 역시 미술품 전자상거래가 특징이다.

가나 웹갤러리 등 기존의 사이버 갤러리와 같은 전시 기능도 물론 있다.

이 회사는 서양화가 김진두.한규암.안현철.허기진, 김상철 공평아트센터 관장, 미술평론가 서상록 등 40대 미술인들의 공동 출자로 세워졌다.

작품을 내는 작가라면 누구나 주주로 참여할 수 있다.

아트빌에는 독립 프로덕션 제이프로가 제작한 작가 인터뷰 등의 영상물도 실린다.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애호가들이 전시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도 쉽게 미술품과 미술인을 접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다.

이런 인터넷 열풍은 그동안 지적돼 온 미술계의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화랑.유명작가가 임의로 가격을 매겨 사기 어려울 수 밖에 없었던 미술품, 소위 '줄' 을 잘 잡은 소수 작가를 빼고는 화단의 주류에 끼기 힘든 현실, 대중의 미술에 대한 외면 등이 그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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