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안 부럽다, 빈자리 없는 작은 영화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10년을 거치며 유럽영화 고정 관객층을 확보한 메가박스유럽영화제의 올해 화제작들. 신데렐라의 작가 샤를 페로의 동명작품을 영화화한 ‘푸른 수염’(프랑스). [메가박스 제공]

9862명. 1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막을 내린 제10회 메가박스유럽영화제를 다녀간 관객 수다. 17만3000여명. 지난달 열렸던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관객 수다. 비교가 안 되는 수치다. 하지만 평균 좌석점유율은 메가박스유럽영화제가 81%로, 부산영화제 64%보다 훨씬 높았다. 인터넷 예매 한나절 만에 전체 티켓의 30%에 이르는 3500장이 팔려나갔다. 개막 전 한때는 극장 개봉작을 제치고 예매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예산은 불과 1억5000만원이지만, 최근 몇 년 간 좌석점유율 70∼80%를 유지해온 작지만 탄탄한 영화제다.

5∼10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리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7회째를 맞는 올해 국제경쟁 부문에 2027편(해외 1425편)이 접수됐다. 역대 최다다. 사전제작지원(1편 1000만원), 기내상영을 포함한 국내·외 순회상영 등 단편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간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 등록된 영화제만 71개. 미등록 영화제를 합치면 훨씬 더 많다. 영화제도 경쟁해야 살아남는 상황이다. 작지만 강한 ‘강소(强小)영화제’의 흥행코드를 살펴봤다.

메가박스유럽영화제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한 ‘애프터 러브’(이탈리아).

◆블루오션 찾기=극장과 대형영화제의 틈새시장, 소위 블루오션을 읽는 게 주효했다. 메가박스영화제는 2000년 “부산영화제에서 놓친 유럽영화를 한 달 후 서울에서 본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유럽에 대한 젊은 관객의 선망도 눈여겨봤다. 이제는 ‘부산 후광효과’에 기대지 않는다. 올 상영작 30편 중 부산영화제 출품작은 단 3편. 관객 1명당 평균 7, 8편을 예매하는 ‘단골’이 형성된 덕이다.

아시아나영화제는 ‘거장의 단편’을 특화했다. 해마다 매진되는 ‘감독열전’이다. 이주연 프로그래머는 “관객들이 유명 감독의 장편은 많이 봤지만, 단편을 볼 기회는 없었다는 데 착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왕자오웨이의 ‘태양은 하나다’와 2006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금지된 사랑에 관한 트레일러’는 제작사 측에서 “더 이상 영화제 상영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작품. 하지만 아시아나영화제에 특별히 ‘전세계 마지막 상영’을 허락했다. 서울 씨너스 이수에서 5∼11일 열리는 핑크영화제는 ‘일본 저예산 성애영화를 여성에게만 보여준다’는 컨셉트를 내세웠다. 단발 행사로 기획됐다가 2007년 첫 해에 좌석점유율 80%가 넘는 호응을 얻어 3회까지 이어졌다.

‘기획의 성공’ 사례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8월)를 빼놓을 수 없다. 제천영화제는 5년 만에 관객 13만명, 좌석점유율 85%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영화와 음악, 휴양지 3가지 요소를 한데 묶은 덕이다.

◆발견의 기쁨=어차피 큰 영화제들과 작품 확보 경쟁을 벌이면 불리하다. 화제작에 연연하지 말고 화제작을 만들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메가박스 김수연 과장은 “요즘 관객은 ‘전문가’ 수준이어서 안이하게 작품을 고르면 실패 확률이 높다. 인지도는 낮아도 관객이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강소 영화제는 기존 관객층을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새 관객층을 창출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메가박스영화제 상영 후 극장 개봉을 해 흥행하는 영화가 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지난해 이 영화제에서 전회매진을 기록한 이탈리아 영화 ‘언노운 우먼’은 이후 극장에서 10만 명을 동원했다. 콘텐트 발굴과 시장 확대, 1석2조의 효과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