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밝아지는 서울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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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로선 별일 아닌 일도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땐 별일인 경우가 종종 있다. 15년 동안 한국을 취재한 영국 언론인 마이클 브린이 쓴 '한국인을 말한다' 라는 책에는 한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이상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인즉,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것을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서울 시민들의 고궁에 대한 무관심을 들고 있다.

브린은 고궁들이 서울이라는 현대적 도시에서 가장 매혹적인 건물들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이들이 밤이 되면 그냥 어둠 속에 묻혀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세계 여러 수도들 가운데 역사적 명소를 이런 식으로 숨겨놓는 도시가 서울 말고 달리 또 있겠느냐고 꼬집으면서 고궁에 조명시설을 설치하면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서울의 밤은 어둡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사용이 많은 옥외광고물 규제, 가로등 격등제(隔燈制)등으로 거리의 평균 조도(照度)는 선진국의 3분의2 수준인 18~21룩스다.

이 때문에 도시 전체 분위기가 어두울 뿐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와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지난해 11월 서울시가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야간조명시설 설치를 의무화함으로써 상당히 개선됐지만 아직 부족한 형편이다. 주요 문화재.고층빌딩 등에 대한 조명도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선진국에선 조명예술이 도시 건축환경의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이나 에펠탑은 밤에 더욱 아름답다. 이들은 야간에 교통 안내표시 역할도 한다. 시간에 따라 조명이 달라지는 미국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야간조명은 뉴요커들의 자존심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야간조명은 시드니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와 일본에선 정부가 민간기업들의 건물 조명을 지원하기 위해 전기사용료를 할인해줄 정도로 적극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24일 국제 관광도시로서 면모를 일신하고 어두운 조명으로 인한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야간조명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한강 교량들에 대한 조명시설을 보강하고,가로등 밝기를 높이며, 각종 문화재에 대한 조명시설도 확대하는 한편 야경(夜景) 시범거리를 조성한다.

내년은 우리나라에 가로등이 도입된 지 1백년 되는 해다. 1900년 4월 10일 종로 네거리에 가로등 3개가 세워진 것이 그 시작이다. '새천년 빛 밝히기' 계획으로 서울 야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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