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국정원장 왜 바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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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3일 천용택(千容宅)국가정보원장을 경질한 것은 올해 안에 모든 국정 혼선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받아들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에 부담스런 문제를 털고 뉴 밀레니엄을 맞겠다는 게 金대통령의 구상" 이라고 전했다.

千원장의 처리문제는 야당의 공세목표가 돼왔다.

한나라당은 국정원 직원들의 정형근(鄭亨根)의원 미행문제를 들어 해임권고 결의안을 국회에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千원장을 바꾼 것은 대야(對野)화해 제스처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고 이 관계자는 분석했다.

金대통령은 묵은 정치현안들을 정리한 뒤 오는 30일께 여야 총재회담을 통해 새 천년을 향한 정치적 화해를 선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千원장의 경질을 '97년 DJ대선자금' 발언파문(지난 16일)이 터졌을 때부터 작심했다" 고 전한다.

그러나 즉각적인 문책론은 야당의 인책공세에 밀렸다는 인상을 주는 데다, 참모진의 충성심 관리에 문제점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뒤로 밀렸다.

金대통령도 17일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하라" 고 千원장을 질책하는 것으로 일단 수습하는 듯 했다.

여기에는 대야관계에서 전략적 고려가 있었다.

일정기간 千원장을 중심으로 여야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쟁점이 'DJ 대선자금' 자체로 옮아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돌발사태여서 후임자를 선택하기 어려웠다.

千원장은 그동안 金대통령의 상당한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전임 이종찬(李鍾贊)원장이 정치적 재기를 위해 최고 정보기관을 잘못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반면 千원장은 충성심 많고 국정원을 제 위치에 가져다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해왔다" 고 전했다.

때문에 千원장은 내년 초 개각 때 모양새를 갖춰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발언파문이 일종의 보안사고란 점에서 '정보 최고 책임자로서 보안을 생명처럼 여기는 국정원을 도저히 이끌 수 없는 상황' 임을 金대통령은 주목했다는 것.

결국 金대통령은 23일 주례보고 때 사표를 받아들였다.

신임 국정원장에는 95년 아태재단 시절부터 金대통령의 대북정책팀을 이끌어온 임동원 통일부장관이 기용됐다.

박재규(朴在圭)신임 통일부장관도 아태재단 자문위원을 맡는 등 DJ 대북정책의 브레인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林원장의 성향이나 스타일, 대북정책 참모로 주로 일해왔다는 점에서 국정원이 국정관리와 권력운영에서 차지하는 역할.위상은 축소될 것이란 게 여권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청와대와 국민회의내 동교동 출신들의 발언권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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