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키워드] 17. 위험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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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1년 3월부터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표시제가 실시된다. 10여년 전만 해도 생명공학과 유전자공학은 식량난의 해결과 불치병 치료를 위한 획기적인 방법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그 산물이 인체와 환경에 해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유전인자들의 순환체계는 안정과 균형을 이뤄왔다. 그렇지만 그 체계에 인간의 한정된 지식으로 변화를 주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않은 결과에 대해 인류는 책임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다.

'위험 사회' 를 처음 제시한 울리히 벡 교수(독일 뮌헨대 사회학과)는 결과에 눈멀고 위험에 귀먹은 맹목적인 '근대화' 를 비판하고 있다.

근대화의 과정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인류의 의지나 목적과 상관없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반성적 근대화가 초래한 위험성을 인류가 인식하게 되면, 인류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반성적인 근대화' 로 전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위험사회' 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선택' 이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해 이뤄진 지금까지의 근대화는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 에 의존해왔다.

곧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위험을 우리는 통제 가능하다고 믿거나 또는 안전기준치 범위 내라는 생각에서 '선택' 해 왔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식품의 겉봉에 쓰여 있는 식품 첨가물이 허용기준치 이하라는 사실에 안심하거나, 또는 도심의 대기오염을 나타내는 형광판에 아황산가스의 농도가 안전기준치 이하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살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은 양이라도 그것이 지속적으로 자연 생태계와 인체에 축적된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그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은 통제된 실험실 밖에서, 인간의 지식 밖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운전자가 굽은 길에서 속력을 줄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측하지 않은 위험' (danger)이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위험,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한 위험' (risk)이다.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예측할 수 있는 위험' 을 양산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또는 정책적 선택에 의해서도 양산되고 있다.예를 들어 승용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합성세제나 일회용품, 전자파, 폐수, 농약과 비료, 동.식물의 남획, 간척지의 개간, 댐의 건설, 핵 발전소 등이 그러한 선택일 수 있다.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한' 위험이 매순간 우리들의 직.간접 '선택' 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통제 가능하지 않은 위험이나 또는 허용기준치.안전기준치의 위험이 누적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곧 부메랑처럼 인류에 되돌아 올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의해 자연은 날로 황폐화되어 가고 있고, 인간은 더욱 그 때문에 위협받을 것이다.

인류의 희망은 '위험사회' 를 인식하고 인류의 생존이 자연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 깨닫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조금씩 힘을 모으기 시작할 때 비로소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홍균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고침> 12월 20일자 3면 '밀레니엄 기획 21세기 키워드' 기사 중 simmulation은 simulation의 오기(誤記)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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