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긍정적으로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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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도 60년 전 6개국으로 시작했다. 쉬운 것부터 한걸음씩 시도하면 50년쯤 뒤에는 동아시아 공동체도 실현될 것으로 기대한다.”

천하오쑤(陳昊蘇·67·사진)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은 중국의 반관반민 외교를 총지휘하는 인물이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공을 세운 10대 원수(元帥) 중 한 명이자 외교부장(장관)과 초대 상하이(上海)시장을 지낸 천이(陳毅)의 장남이다. 중국 정계에서 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을 가리키는 태자당(太子黨)의 멤버다.

베이징(北京) 부시장을 지낸 그는 2000년 9월 이후 중국우호협회장을 10년째 맡고 있다. 왕광야(王光亞) 외교부 상무부부장(차관)과는 처남·매제 사이다. 중국작가협회 회원으로서 문집과 시집을 출간했다.

최근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서 열린 한·중·일 3국 문화교류 포럼에 참석한 천 회장을 현지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이명박 한국 대통령,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일본 총리가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제2차 3국 정상회담을 열고 동북아 공동체 구상을 제시한 직후였다. 중국 지도부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 천 회장의 입을 통해 동북아 공동체 구상에 대한 중국 측 속내를 들어봤다.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처음 제시됐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아시아인의 바람과 마음속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명 발상지인 아시아는 유럽에 추월당했으나 마침내 낙후 상태에서 벗어나 부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역사 조류다.”

-동아시아 삼국 문화의 공통점은.

“개인 수양도 중시하지만 가족·지역사회·국가 등 집단 속에서 개인이 발휘하는 역할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공통점이라고 본다. 집단의 발전 과정 속에서 공헌하는 것을 강조했기에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대륙인 중국, 반도인 한국, 섬나라인 일본은 지리적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성격과 기풍이 형성됐다. 특히 근현대에 들어 전쟁으로 한·일과 중·일 간에 심리적 거리감이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 중·한도 소원했다. 이런 역사적· 심리적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자세로 소통해야 한다.”

-나라 사정과 발전 수준이 서로 다른데, 3국이 동북아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겠나.

“가능하다고 본다. 세 나라의 요리 특색이 다르듯, 삼국 문화가 획일적으로 같아질 필요는 없다. 중국에 한류(韓流)가 유행하듯, 일본의 화풍(和風),중국의 하우(夏雨)도 존재한다. 상대방의 문화 속에서 좋은 점을 배우되, 서로 존중하면 된다.”

-3국 공동체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이 절실한가.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정부든 민간이든 다방면·다층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이견이 생겨도 부풀리지 말고 상호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이미 경제적으로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자신의 장점과 상대의 단점을 비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인정하고 포용하고 배워야 한다.”

-북한 핵 문제 등으로 동북아가 조화롭지 못하다. EU 같은 공동체 실현은 요원하지 않겠나.

“EU 통합 노력도 60년 전 6개국에서 시작해 점차 확대됐다. 동아시아는 전쟁을 겪었고 문화 차이가 있으며 정치체제와 사회제도가 달라 통합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원대한 목표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 이견이나 마찰이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선 곤란하다. 우선 앞으로 10년간 가능한 통합 노력을 시도해보면 조금씩 좋아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력을 계속하면 50년쯤 뒤에는 지금의 EU와 비슷해질 수 있지 않을까. 북핵 문제가 아시아 발전에 부담이 되고 있지만 다자회담을 통해 해결해나가면 된다.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말고 동북아 공동체 속에 끌어들여야 한다.”

-일본 하토야마 총리가 아시아 중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역사 문제가 골칫거리이지만,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로 나가야 한다. 반성도 하고 교훈도 얻어야 한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을 지향함) 전략으로 현대화를 이뤘지만 침략 전쟁으로 아시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아시아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하토야마 총리를 환영한다.”

양저우(중국 장쑤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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