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욕설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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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의회는 '말하는 곳' 이다.

영어로 의회를 뜻하는 parliament는 프랑스어에서 '말하다' 는 뜻의 parler가 어원(語源)이다.

영국에선 의회정치를 '말에 의한 정치(government by talk)' 라고 정의한다.

의회정치에서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치가로서 성공하자면 우선 말을 잘해야 한다.

영국 의회의 의사진행 장면을 보면 의원들의 말 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다.

영국 의회에서 모든 발언은 간단 명료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는 것이 절제다.

할 말은 하되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려선 안된다.

특히 상대방의 발언 동기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발언 동기를 비난하면 개인 감정이 개입돼 상대방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온화하고 중용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의장은 '비(非)의회적 표현' 을 쓴 의원에 대해 발언록을 삭제하는 등 직권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의원이 발언을 할 때는 의장을 상대로 하며 상대방 의원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고 우회적 표현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상대방 의원에게 '명예로운' 이란 존칭을 붙여 "○○지역 출신의 명예로운 의원" 이라고 부르며, 상대방의 경력에 따라 군인 출신이면 '용감한' , 변호사 또는 학자 출신이면 '학식있는' 등 표현을 삽입한다.

이같은 호칭은 토론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의회의 품위를 지켜나가는 데도 기여한다.

의원은 인신공격을 해선 안된다.

그 중에서 제일의 금기어(禁忌語)가 '거짓말' 이다.

거짓말의 대용어로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 '정직성의 부족함' 이다.

명재상(名宰相)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반대당 의원이 거짓말로 공격해오자 "명예로운 ○○의원께선 '용어상 부정확함' 을 범(犯)하셨다" 고 반박했다.

이밖에 바보.비겁자.위선자.악당.바리새인.부패분자.반역자.강아지.돼지.당나귀 등도 금기의 단어다.

심지어 비둘기까지도 1948년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최근 국회에서 한 여당 의원이 야당 여성의원에게 '싸가지 없는 ×' 이라고 욕설을 해 물의를 빚었다.

문제의 의원은 지난해에도 한 야당 의원과 '이 ××' '저 ××' 를 주고 받았던 전력(前歷)이 있다.

얼마 전엔 여야 원내총무들이 서로 욕설을 주고 받으며 한바탕 말싸움을 벌였다.

국회의원들이 시정잡배들처럼 서로 욕설을 해대는 것은 이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또 욕설은 아니더라도 저속한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의회정치라는 스포츠에는 모름지기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규칙을 어기는 선수에 대해서 여론은 어김없이 옐로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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