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당한 ‘전자대국’ … 일본의 충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 재계는 전기·전자 강국을 자부하는 일본 업체들이 한국 업체에 실적에서 완패했음을 인정했다. 소니의 오네다 노부유키(大根田伸行)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소니가 (삼성전자에) 패한 근본적 원인이 제품의 경쟁력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大坪文雄) 사장도 “(삼성전자와의) 글로벌 경쟁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 재계의 이 같은 분위기를 ‘(한국 업체에 대한) 사실상의 패배선언’이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마라톤에 비유하면서 “삼성전자의 뒷모습이 크게 멀어졌다”고 표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례적으로 일본 업체들이 한국 업체에 크게 뒤진 원인과 배경을 심층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업체들은 경기침체 때 투자를 줄이는 데 급급했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불황기를 이용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뒤 경기 회복기에 대량 생산에 나서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불황기에는 설비 가격도 내리기 때문에 경기 회복기에 대비해 거액이 투입되는 반도체와 액정 투자의 적기라는 분석이다.


이런 전략적인 투자가 가능한 배경에 대해 이 신문은 “강력한 경영 리더십을 발휘한 이건희 전 회장의 존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 경영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오너 경영인의 담력이 최고 수익의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경영을 향한 열의도 일본 전자업체들과 삼성 간의 우열을 가른 요인으로 꼽혔다. 삼성은 협소한 국내 시장을 벗어나 모든 상품의 타깃을 글로벌시장으로 설정하지만 일본 업체들은 내수시장에 안주해 와 대응이 늦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삼성·LG 등 한국 전자업체가 지난해 말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 들어 원화 약세에 힘입어 유럽은 물론 중국·인도·중남미 등 다양한 시장에 경쟁력 있는 상품을 신속하게 내놓아 매출을 늘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업체가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해외시장 개척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