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동포 돕기 5만명 동참 이끈 '서명 할머니' 김인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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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녘땅 어딘가에 살아있을 자식들을 생각하며 수시로 점심도 잊은 채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5만명을 넘어섰네요. "

탈북동포돕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인식(金仁植.80.서울 노원구 중계동)할머니가 모두 5만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金할머니가 서명운동에 나선 것은 지난 6월.

굶주림과 박해를 피해 북한에서 탈출했으나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중국 등을 떠도는 동포가 10만명이 넘는다는 얘기를 교회 목사로부터 듣고 '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운동' 에 참여,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金할머니는 한 사람이라도 더 서명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집을 나서 하계.상계동 일대는 물론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았다.

고교를 방문, 탈북동포들의 실상을 설명하기도 했고 버스 정류장과 전철역에서 시민들의 서명 동참을 호소했다.

처음에는 1천명을 목표로 삼았다.

서명운동에 몰두하다 보니 점심을 건너뛰는 것이 예사였다.

저녁나절이면 말을 할 수 없었고 기침을 하면 검은 가래와 쓴물이 목으로 넘어왔다.

다리에 파스를 붙여야만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시내 곳곳을 돌며 서명을 받은 金할머니의 가슴에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金할머니는 51년 1.4후퇴 당시 숙모.고모 등이 '잘 산다' 는 이유로 공산군에게 총살당하자 남편(사별)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아홉살난 아들과 여섯살배기 딸을 친정에 맡기고 "보름이면 돌아오겠다" 며 떠났지만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金할머니는 한국에서 남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칠흑같은 밤중에 임진강을 건너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가까스로 살아났던 경험이 생생하다는 金할머니는 "중국.동남아를 떠도는 탈북자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에 떠는 '탈북동포를 돕는 일에 나서겠다" 고 말했다.

金할머니와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받은 2백60만명의 서명이 담긴 '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서' 는 13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전달된다.

유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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