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기획 21세기키워드] 6.게놈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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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0년대 들어 본격 추진되고 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엄청난 연구비와 수많은 연구 인력이 투여되는 거대 과학(Big Science) 연구의 전형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다.

인간의 유전 정보를 하나씩 해독해 이를 데이터 베이스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놈(유전자 덩어리, 즉 유전체를 가리킴)계획은 30억 달러(약 3조4천2백억원)라는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진행되고 있는 밀레니엄 프로젝트다.

미국 에너지부(DOE)와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는 미국 외에도 일본.영국.이탈리아.프랑스.러시아 등이 참가하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유전체(遺傳體)를 하나씩 확인해 약 30억개의 유전 정보와 8만~10만개의 유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인간 DNA에 포함된 유전자의 유전 정보 코드를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관계자들의 설명대로라면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인류에게 새로운 빛을 던져줄 것이다. 이들은 유전체들의 유전 정보를 체계적으로 해독하면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암, 노인성 치매인 알츠하이머병 등과 같은 난치병과 유전 질환 치료, 신약 개발, 심지어는 농업.에너지.환경 문제의 해결에도 활용해 인류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꼭 장밋빛만은 아니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윤리적.사회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 게놈을 파악해 우수한 형질의 인간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은 19세기말부터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온 우생학의 현대판 변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또 무분별한 인간 유전자 조작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새로운 재앙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생명 연구와 관계된 윤리적.법적.사회적 이슈들에 관한 연구에도 전체 예산의 3~5%를 배정하는 등 기존의 다른 과학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과학과 사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예상했던 15년의 계획을 단축해 2003년께 완료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제는 각 유전체의 구조뿐 아니라 그것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알아내는 더욱 방대한 연구를 추진하려는 야심찬 계획으로 발전하고 있다.

90년대 초에 과학자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거대 과학 프로젝트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외에도 소립자 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초전도 충돌형 가속기(SSC: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고에너지 물리학을 대변하는 초전도 충돌형 가속기 계획은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해 폐기됐다.

대신 분자생물학을 대변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가 가속화하면서 현재 희망찬 걸음으로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20세기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주도하던 물리과학의 세계였다면 21세기는 유전공학이 주도하는 생명과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바로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명과학의 핵심인 인간 게놈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불로장수의 새로운 신천지로만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인류에게 엄청난 해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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