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 만든 사랑과 낭만 코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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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남성합창단이 천안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정기공연에서 첫 곡인 ‘사랑이 예 오셨네’를 열창하고 있다. 이훈 단장(앞줄 오른쪽 셋째)이 지휘자와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조영회 기자]

“입장료는 라면 한 개 입니다. 라면은 주위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전달됩니다.” 27일 오후 6시30분 천안시 신부동 천안시민문화회관 대강당 입구. 공연은 7시30분부터 시작되지만 출입구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마다 손에는 라면 한 개씩을 들고 있었다. 입장이 시작되자 팜플렛을 나눠주는 탁자 앞에 라면상자와 봉지가 수북이 쌓였다. 입장료는 라면 한 개지만 좋은 취지에 동참한다는 마음에 박스째 들고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라면은 이날 정기공연을 한 ‘충남남성합창단’을 보러 온 관객들이 입장료 대신 낸 것이다.

공연장을 찾은 이유진(17·천안천일고)양은 “선생님께서 좋은 공연이 있다고 알려줘 왔는데 라면 한 개로 공연도 보고 이웃도 도울 수 있어 기쁨 두 배”라며 웃는다.

초등학생 자녀들과 공연을 보러 왔다는 주부 김유진(44·천안시 두정동)씨는 “오늘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대신 공연장을 찾았다”며 “프로그램에 좋아하는 가수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가을 밤 수놓은 아름다운 선율

이날 공연은 충남남성합창단의 열네 번째 정기공연이다. ‘사랑·낭만~ 음악이 있는 가을’을 주제로 주옥 같은 가을 노래로 꾸며졌다. 가족과 팝송, 대중가요까지 관객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곡들이 선보여 공연 내내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공연은 1~4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서는 남성합창단이 6곡을 선사했다. 공연은 ‘사랑이 예 오셨네’로 문을 열었다. 중·저음의 묵직한 화음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했다. 이어 ‘마을’과 ‘살짜기 옵서여’ ‘CANON in D.’ ‘내 맘의 강물’ ‘찬양의 로리타’가 이어졌다.

2부에선 초청 성악가 소프라노 윤지영씨가 무대에 올랐다. 가곡 ‘임이 오시는지’ 등 두 곡을 선사한 윤씨는 프로답게 화려한 무대매너와 빼어난 목소리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윤씨의 공연이 끝나자 박수로 공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3부에선 천안장로합창단이 특별 출연해 두 곡을 불렀다. 마지막 4부에선 남성합창단이 관객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선사했다. ‘애인 있어요’를 비롯해 ‘누구 없소’ ‘한계령’ ‘아름다운 노래들’이 불려질 때마다 관객들은 낮은 소리로 따라 부르거나 가볍게 손뼉을 치며 리듬을 맞췄다. 발로 리듬을 타거나 어깨도 들썩였다. 비록 음악을 전공한 성악가나 가수가 아닌 아마추어들이지만 합창단이 쏟아내는 열정과 화음이 600여 명의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엄희진(17·천안천일고)양은 “학교 추천으로 공연을 보러 왔지만 아저씨들이 부르는 노래가 너무 좋다”며 “천안에는 이런 공연이 많지 않다. 앞으로 공연이 열리면 또 보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유일의 아마추어 남성합창단

충남남성합창단은 충남 유일의 아마추어 남성합창단이다. 8년 전인 2001년 12월 천안과 아산지역 음악동호인 15명이 모여 창단했다. 직업과 나이, 전공 여부를 떠나 음악을 좋아하고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음악’ 하나로 모이다 보니 단원들의 직업과 연령 층이 다양하다. 의사와 약사, 교수, 기업인 등이다. 나이도 40대 초반에서 60대까지다. 단원 가운데 파트 별로 전문 음악인도 참여하고 있다.

남성합창단은 지난해 말 연습실을 마련했다. 그 전까지는 대학 강당이나 병원에서 연습을 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젠 언제든 연습을 할 수 있다. 곡 선곡은 단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단원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은 주로 음악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사회복지시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공연 때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대관료와 팜플렛·플래카드 제작비용 등이 만만치 않다. 모두 회원들의 낸 회비와 합창단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합창단에는 음악을 좋아하고 성실하게 활동할 수 있다면 언제든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악보를 보지 못해도 베테랑 단원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합창단은 이훈(56·아산 세란내과 원장) 단장이 이끌고 있다. 10년 전 서울에서 아산으로 내려왔다는 이 단장은 “지역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마땅히 모인 곳도, 모임도 없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합창단을 만들게 됐다”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무장을 맡고 있는 이운희(43·다산 엔지니어링 대표)씨는 “2005년 남성합창단 공연에 갔다 매료돼 제 발로 찾아갔다”며 “27일 공연 때도 그랬지만 고정 팬들이 많고 빠지지 않고 찾아주는 관객도 적지 않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라고 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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