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40만시대] 하. 취업 '좁은문' 고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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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매년 공개채용으로 인력을 충원해 오던 무역업체 K상사. 올해부터는 수시채용 방식을 새로 도입했다.

연 1, 2회의 공채대신 퇴직.사업확장 등으로 결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사람을 뽑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원자들의 인적.경력사항을 기록한 인재풀(pool) 담당부서가 상시 운용되고, 과거 많아야 연 두세차례 열리던 인사위원회는 최근 3주에 한번꼴로 소집되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디자인.유통 등 전문직의 경우엔 대졸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선호, 90% 이상을 경력직으로 선발하고 있다.

신입사원은 즉시 투입이 불가능한데다 재교육 비용까지 들어 경력직보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

K상사의 사례는 '대졸실업 대란' 이 단순히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극복이나 경기 호전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미 누적된 '취업재수생' 문제가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및 채용문화 변화로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전문기관들에 따르면 99년 고학력 취업시장의 특징은 채용규모 축소와 수시채용 등 신 채용기법으로 요약된다.

수시채용의 증가는 매년 10~11월 대학졸업예정자들을 대거 흡수했던 '취업시즌' 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뜻한다.

대졸자들에게는 일정기간 실업상태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고, 일단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면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 한 영구실업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생겨나고 있다.

전체 실업률에 비해 20대 실업률이 높은 것은 이같은 변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安周燁)연구위원은 "신규 졸업자는 '기존 구인자들보다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기까지 상당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십수년전부터 유럽 등 선진국의 주요 사회 문제로 떠오른 '청년실업의 고착화' 현상이 우리 사회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진단을 조심스레 내리고 있다.

조선.자동차.건설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고부가가치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산업구조도 이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산업구조 자체가 대량 고용효과를 창출하기 어려워 일자리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IMF를 겪으면서 조직을 슬림화한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떠안기보다 자동화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노대명(魯大明.정치학)인하대 강사는 "오일쇼크 후 활력을 잃은 유럽의 경우에도 80~90년대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자연 감원만큼도 충원하지 않아 청년층의 실업이 심각한 상태" 라며 "우리 사회에도 이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배익준.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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