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휴진 파업'으로 문제 해결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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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전국에서 1만7천여명의 의사들이 모여 '왜곡된 의약분업 분쇄를 위한 전의료인 규탄대회' 를 가졌다. 평소 같으면 환자 진료에 바쁠 시간에 가운을 벗어던지고 머리띠를 두른 채 피켓을 흔들며 목청 높여 의사들이 주장한 내용은 '완전분업 실현' 이었다.

약사들이 의사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을 팔 수 있게 한 의약분업안을 지적하며 모든 의약품에 대해 의사는 처방하고 약사는 조제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약분업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사실상의 의약분업 반대로 들렸다.

의악분업의 한 주체로서 그 방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날 집회는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사실상 '파업' 이라는 수단을 택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의사라고 집단행동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그들이 하루 휴진한다고 진료체계에 엄청난 문제가 생기거나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사태가 빚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장 감기나 배탈 등으로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시민들로선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병.의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이날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3곳 중 한 곳의 의료기관이 휴진을 한 셈이다.

국민건강을 강조하면서 환자들의 건강권을 일시적이나마 봉쇄한 것은 스스로 '의사' 이기를 포기한 행위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의약분업 결정과정을 돌이켜보더라도 의사들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내년 7월 시행을 앞둔 의약분업안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의.약단체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단체통일안이 골격이 됐고, 심의과정에는 시민대표나 정부관계자뿐 아니라 의사와 약사들도 참여해 마련됐다.

규탄대회에서 나온 의사들의 목소리도 논의과정에서 이미 그들 단체를 통해 제기됐던 것이지만 의료서비스의 정상화라는 기준과 현실성 등을 감안해 조정되고 합의를 본 것이다. 그 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마당에 집단행동을 통해 똑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은 설득력도 떨어질 뿐 아니라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의사들의 주장은 '의약분업안이 불완전하다' 는 것이지만 그 속내는 한마디로 '의사들에게 불리하고 약사들에게 유리하다' 는 것이다. 분업이 실행되면 그동안 약품판매로 적지않은 수입을 올려온 의사들로서는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안은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의료보험 약가 실거래제를 이미 도입해 약판매 수익의 거품을 제거했고, 기초진료비와 처방료를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의약분업안이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고 시행과정에서 예상 못한 착오가 빚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때 보완하면 된다. 토론을 거쳐 시행준비까지 마무리된 마당에 똑같은 주장으로 의료개혁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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