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씨 인생역정] YS때 검찰총수 올라 옷로비사건으로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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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이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지금 남한강변에서 소주를 한잔 하면서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됐는지 반성하고 있어. "

23일 자정 무렵 어렵사리 전화 통화가 된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목소리는 회한에 젖어 있었다. 부인 연정희씨와 함께 최병모 특검에 자진 출두하기로 한 전날 밤이었다.

올 한해 가장 극적인 상승과 추락을 경험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金전총장일 것이다. 金전총장은 올초까지만 해도 출세가도의 정상에 서 있었다. 그는 김영삼(金泳三)정부 때인 97년말 검찰총장이 됐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부터도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올 1월 7일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추락이 시작됐다. 당초 여론은 "관련 검사들을 빠짐없이 사법처리하라" 는 것이었고 金전총장도 이를 의식한듯 강공으로 나갔다.

그럴수록 검사들 사이에선 "수뇌부가 책임을 부하들에게만 돌린다" 는 불만이 번져나갔다. 이후 심재륜(沈在淪)당시 대구고검장은 1월 27일 "정치검찰 물러가라" 는 성명을 발표했고 급기야 2월 1일엔 평검사들이 수뇌부를 비난하는 서명을 받는 사태로 이어졌다.

하지만 金전총장을 완벽한 추락의 길로 내몬 것은 그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된 당일인 5월 24일 터져나온 옷로비 사건이었다.

보름 만인 6월 7일엔 진형구(秦炯九)전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이 터져나왔고 그는 바로 다음날 경질됐다.

金전총장 부부는 8월 말 각각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 그리고 24일엔 부부가 나란히 특검 사무실에 출두했다. 그들 부부가 지은 잘못의 크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인간적으론 가혹한 일임이 분명했다.

金전총장은 "공직자로서 가정을 올바로 다스리지 못한 것이기에 용서조차 구하기 부끄럽다" 며 고개를 떨구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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